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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최종선고에 진중권 “예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인상주의 시절”

[재경일보=왕미선 기자]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2016년 사기 혐의로 기소 가수 조영남이 25일 무죄 선고를 받자 현대 미술이란 무엇인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앞서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모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천3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작업에 참여한 송씨를 조씨의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라고 봤고 조씨의 '그림 대작'도 구매자들을 속인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BR><BR>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결을 원심을 확정했다.<BR><BR>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는 조 씨. 2020.6.25

조씨를 변호한 강애리 변호사는 대법원 선고 후 연합뉴스에 "현대미술에 있어서 창작 행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대중이나 미술계가 아닌 사법부에서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게 저희 입장이었고 자칫하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판결이 나올 뻔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법부에서 부담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한다"며 "법리적으로나 미술계 입장으로나 현명하게 잘 판단을 내려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을 두고 미학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미학스캔들'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笑劇)"이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그는 미술사에서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게 맡기는 서양미술 전통을 소개하면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은 더는 예술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판결이 나온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중이야 몰라서 그런다 쳐도, 그걸 알아야 할 전문가 집단마저 현대미술이 탄생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예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19세기 인상주의 시절에 가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도 "무죄는 예상된 결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대미술에는 과거와 달리 '이것이 예술'이라는 기본적 원리나 창작 기준이 없어서 조 씨를 미술사적 맥락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미술 영역에서는 기존 예술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컨셉트를 새로운 예술 생산의 미학적 원리로 채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위반하면 나쁜 그림이었으나 모더니스트들이 그것을 부정했고 예술종말론이 나왔다"라며 "이른바 예술이 죽어버린 시대가 되면서 쓰레기나 똥, 오줌까지 모든 것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면 조씨가 비난받을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술사나 미학적 기준으로는 처벌 근거가 없지만, 예술을 자본이 지배하는 현 구조에서 상업적 윤리를 따지면 비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은 한국 예술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으로 미술계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라며 "오늘날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과 자본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죄 판결에도 조영남 씨에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조수를 쓰는 것이 미술계의 흔한 관행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며, 이날 대법원 판단으로 혼자 작업하는 대다수 작가가 오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미술협회 사무처장인 서양화가 김용호 씨는 "이런 사안으로 법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법원 판단으로 마치 전체 화가가 조수를 쓰는 것처럼 오도될 수 있어 자존심 상하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업작가 대다수는 혼자 그리며, 작업량이 많아 조수를 쓴다는 것은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라며 "(이번 판결이) 인생을 걸고 그리는 작가들이 가볍게 취급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작가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를 떠나 노동의 대가로 봐도 조씨는 보조작가에게 너무 인색했다"라며 "앞으로 조씨가 무죄라고 당당히 대작을 그릴 텐데, 그를 작가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앞으로 더욱 진지한 활동으로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미술사학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크게 보면 조영남 씨가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지만 예술적으로는 많은 숙제를 받은 것"이라며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지만 그동안 나온 비판이 모두 해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결국 작가 본인이 진정한 작품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화가가 탄생하고 이름을 얻으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최근 유명인들이 쉽게 진입해 상업적 이익까지 누린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젊은 작가들이나 고생하는 화가들이 자괴감을 느낄 수 있음을 알고 연예인들이 더 진지하게 미술을 바라봤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