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직업의 세계] 코로나19 2차 대유행 ① 감염병 역학조사관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지난달말 세계 누적확진자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선데 이어, 지난 4일에는 하루에만 21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며 일일 최다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발생현황을 보면 미국의 신규 확진자는 이달 들어 연일 5만명이 넘고, 브라질의 경우 7일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누적 확진자가 160만명을 넘어섰다. 멕시코는 누적 사망자가 3만명을 넘어서면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은 내년 봄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2억명에서 6억명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한 상황이다.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국내 코로나19 발생현황과 추이를 보면, 지난 5월 첫 일주일간은 일평균 6.42명이 발생해 코로나19가 억제될 듯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5월6일 서울 이태원클럽 집단감염 발생 이후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가 지속해서 발생했고, 여름철에 유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수도권 뿐 아니라 충청과 호남지역까지 전파가 이어지고 있다. 가을철과 겨울철에는 유행의 크기가 더 커질 수 있어, 장기전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반년 가까이 계속되는 가운데, 방역 당국은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 정비에 들어갔다. 지난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꾸렸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등 조직을 상설화하기로 했으며, 중수본의 경우 정원을 80여명으로 잡고 인력을 보강 중이다. 코로나19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직업들에 대해, 감염병 역학조사관을 시작으로 하나씩 알아보고자 한다.

역학조사관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역학조사관이 농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20년 전부터 있었던 '질병 수사관'

감염병 역학조사관이라는 직업은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중에 알려지고 있지만, 역학조사관 제도는 감염병의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1999년부터 운용돼 왔다.

감염병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의 원인과 특성을 밝혀내는 역학조사를 통해 전염병 확산을 막고 방역 대책을 세우는 국가·지방 공무원으로, 질병 원인을 수사해 '질병 수사관'이라고도 한다.

감염병이 퍼져나갔을 때 감염병 역학조사관은 가장 먼저 현장에 나가 감염병이 어떻게 시작되어 퍼져나갔는지 조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역학조사가 끝나면 질병의 정체를 밝히고 확산을 막는 방역 대책을 세우는 데 주력한다.

질병관리본부(질본) 중앙역학조사반은 ▲신종 및 생물테러 감염병 ▲수인성 식품매개 감염병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결핵 ▲의료관련 감염병 ▲수혈매개 감염증 ▲인수공통매개체 및 기타 감염병 ▲원인불명 질병 등 8개 전문역학조사반으로 구성, 운영되고 있다.

둘 이상의 시·도에서 역학조사가 동시에 필요하거나, 감염병 발생 및 유행여부 또는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에 관한 조사가 긴급히 필요한 경우 역학조사관이 출동한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
▲ 충북 옥천군 보건소 역학조사관들이 이원면 보건지소 앞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코로나19와 사투 중인 역학조사관들

역학조사관들은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며 검체 채취 등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인터뷰를 통해 동선을 알아내야 한다. 확진자의 개인 진술은 물론 휴대전화 GPS(위성항법시스템)를 추적하고 카드결제 등의 금융 정보도 활용한다.

동선이 파악되면 전쟁터와도 같은 현장으로 출동한다. 확진자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거나 결제 카드내역이 없는 경우 온 종일 CCTV를 확인해야 할 때도 많다. 확진자와의 밀접 접촉자 및 자가 격리가 필요한 이들을 파악한 후에는 보건소에 명단을 전달한다.

역학조사관은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하거나 출입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등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현장 방역과 확진자들의 동선 및 접촉자를 모두 파악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코로나19는 산발적 감염이 지속돼, 지난 7일 정오 기준으로 서울 왕성교회 관련 38명, 대전 방문판매 모임 관련 87명, 광주 방문판매 모임 관련 95명, 광주 고시학원 관련 6명, 경기도 고양 원당성당 관련 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이다. 반면 현재 국내 역학조사관은 질본 소속 77명, 각 시·도 소속 53명 등 13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이후 인력 부족 우려가 제기됐지만, 수년 째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족한 인력으로 집단 감염원을 봉쇄해도 새로운 감염원이 나타나게 되면 역학조사관들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다. 지난 8일 광주에서 발생한 확진자 감염 경로를 보면 일곡중앙교회, 광륵사 등 기존 감염원에 최근 등장한 광주 고시학원, SM 사우나까지 나온다. 여기에 해외 유입 환자까지 있었다. 확진자 동선에 포함된 시설 방문자, 접촉자가 근무하는 회사, 접촉자의 가족이 근무하는 학교 등에까지 코로나19 여파가 더욱 확산되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역학조사관들은 발생 시설뿐 아니라 확진자의 동선, 접촉자, 접촉자의 동선까지 다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와중에 자신의 동선에 대해 거짓 진술하는 확진자도 역학조사관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확진자가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감염됐는지 신속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전파 고리를 차단하지 못해 '조용한 전파'가 이어지고, 이는 결국 또 다른 감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현재 구체적인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는 확진자의 10%가 넘는 상황이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보건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깜깜이 감염이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코로나19 역학조사관
▲ 광주 북구보건소 코로나19 전담대책본부 역학조사팀 직원들이 CCTV를 보며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를 확인하고 있다.

◆ 되기도 어렵고 처우도 부족하고…사명감으로

공중보건의 대상 질본 역학조사관 교육과정은 1999년 7월부터 시작됐으며, 2015년 감염병 예방법 개정 이후 현행 교육수료 요건을 마련하고 수습역학조사관의 교육훈련이 시작됐다.

역학조사관은 전문임기제 '가'급과 '나'급으로 나뉜다. '가'급은 의사 면허증 소지 후, 의료기관·정부기관·기업체·실험실·학계 등에서 6년 이상 연구 또는 근무 경력이 있어야 응시할 수 있다.

'나'급의 경우 의사 면허증 소지 후 관련분야 2년 이상 연구 또는 근무 경력자이거나 의학, 간호학, 수의학, 약학, 보건학 등 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임용예정 직무분야와 관련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2년 이상 해당 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응시 가능하다.

역학조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3주 이상의 기본교육 1회와 총 18일의 지속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 유행역학조사 결과보고서 2편, 감염병 감시분석보고서 2편, 보도자료 또는 홍보자료 2편, 역학조사 관련 논문 학술지 게재 1편 등의 학술활동도 해야 한다.

2년간의 현장 중심 직무간 훈련(OJT) 기간 동안 교육 및 훈련 과정을 이수한 사람 중에서 역학조사관이 임명된다. 대부분 공무원 신분이 인정되지만,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계약직이다. 보수도 민간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 지 알 수 없고, 앞으로 감염병 사태는 또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지금도 역학조사관들은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사명감으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