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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비율 60%‘ 관리 재정준칙 도입…“실효성 낮은 면피용” 비판

정부가 2025 회계연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를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5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전쟁,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면 준칙 적용을 면제한다는 조항도 담았다.

시행 시기도 현 정부 임기 이후인 2025년으로 미뤘다.

정부가 5일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에는 국가채무 수준과 고령화 속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등 현재 국내 여건을 고려해 상당히 '느슨한' 수준의 규정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런 재정준칙은 실효성이 부족한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수준의 준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정준칙

▲국가채무 60%·재정수지 -3% 이내…재정준칙 2025년 도입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한 규범이다. 경제위기나 대규모 재해 등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이 불가피하지만 재정지출 속도가 너무 가파르면 그것 자체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을 사용하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제반 여건과 해외사례 등을 고려해 국가채무비율 기준선을 GDP 대비 60%,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를 -3%에 두기로 했다.

다만 이 기준선을 일정 부분 넘나들 수 있도록 산식을 만들었다.

산식은 국가채무 비율을 60%로 나눈 수치와 통합재정수지을 -3%로 나눈 수치를 서로 곱한 값이 1.0 이하가 돼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해 일정 수준 이내에 머무르면 재정준칙을 충족했다고 보는 방식이다.

다만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위기, 대규모 재해 등 상황에서 과감한 확장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뒀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은 경우 준칙 적용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따른 채무비율 증가분은 첫해에 반영하지 않고 다음 3개년에 걸쳐 25%씩 점진적으로 가산하는 방식을 썼다.

경제위기는 아니더라도 경기 둔화 상황인 경우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3%에서 -4%로 1%포인트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 기준 완화가 상시화되지 않도록 최대 3년의 범위로 제한한다.

비율이 한도를 초과할 경우 다시 한도 이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정건전화 대책 수립을 의무화했다. 초과세수 등 발생 시 채무 상환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비율은 30%에서 50%로 확대했다.

재정 여력을 비축해야 할 시기에는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 앞으로 닥칠 경제위기와 중장기 리스크에 대비한다는 취지다.

▲ 전문가 "원칙 자체도 느슨한데 예외까지 둬…확장재정 면책용 아닌가" 비판

전문가들은 이런 재정준칙이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박형수 연세대 객원교수는 "정부는 2024년 국가채무비율을 58.6%로 전망하고 있는데 60% 근방까지 간 이후부터 재정준칙을 적용하겠다는 뜻"이라며 "국가채무비율이 60%까지 늘어나는 것은 허용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16년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40% 기준을 적용한 적도 있는데 60%라는 숫자가 목표로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표치가 너무 높게 설정돼있을 뿐 아니라,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비율 중 하나만 달성해도 준칙을 준수한 것으로 보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고령화를 고려하면 60%는 구속력과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의미 있는 숫자"라면서도 "5년 단위로 목표를 잡는 방식을 취하면 채무 준칙 상한이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는 "지금껏 관리재정수지를 주로 봤는데 재정준칙으로 통합재정수지를 택한 것은 '물타기'이며, 과거 수치와 정확히 비교하기가 어렵다"며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적자 정도가 작게 보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염 교수는 "엄격하고 강한 준칙을 만들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유예하도록 해야 했는데 원칙 자체가 느슨하면서 예외까지 둔 것은 문제"라며 "이런 방식의 재정준칙은 '우리도 준칙이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만 보여주는 것으로, 정부의 확장재정에 면책을 해주려는 면피용 규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가 준칙의 수량적 한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국가재정법에는 준칙 도입 근거만 마련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였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행령에 한도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조치"라며 "정부가 만들고 정부가 지키는 형태의 '자율 규제' 준칙은 결국 형식적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확실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우철 교수도 "국가채무비율 등 숫자를 시행령에 규정하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약한 준칙, 매우 구속력이 떨어지는 낮은 수준의 준칙이 될 수밖에 없다"며 "준칙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국가재정법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