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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산업, 그리고 대기업의 진출…공정성과 생존권 사이에서

최근 대기업의 중고차 소매업 진출을 염두해 두자 중고차 공정성과 생계 보장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작은 동반성장위원회의 결정이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에 부적합 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개인 사업체들은 영세하지만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는 산업 전체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로 이루어진 자동차산업협회가 중고차 판매업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입차 브랜드들은 자사 브랜드의 중고차 판매를 하고 있다. 업계는 중고차 산업 진출이 국내 완성차 업계에 대한 역차별 해소와 중고차 산업 경쟁력 향상 그리고 중고차 시장 투명성 제고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동반성장위원회 의견을 토대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이를 결심할 생계형적합업종심의위원회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가지지 못하고 있다.

리본카는 맞춤형 중고차 판매 시스템 관련 기술특허를 선보여 고객의 차량 선택을 효과적으로 돕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오토플러스 제공

◆ 박영선 "동반성장위 의견 무시할 수 없어"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은 8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진출을 막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동반성장위에서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부당하다는 의견이 왔다"며 "이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중고차 시장이 생계형 적합업종 규모를 넘어서는 건 맞다"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보다 독점을 방지하고 상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는 데 대해 "의견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대기업 진출 막으며 보호했지만 중고차 시장 발전은 답보 상태

중고차 판매업에 대해 지난 7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하는 동안 산업 발전이나 소비자 만족이 답보상태였다는 점에서 변화 목소리도 크다.

지난해 중고차 거래는 224만대로 완성차 판매량의 1.3배에 달했다.

중고차 1대 평균 매매가격이 1천만원이라고 보면 시장 규모는 약 22조원이다. 이는 작년 한국GM, 르노삼성차, 쌍용차 3사 매출액 합계(16조7천600억원) 보다 5조원이 많다.

반면 대기업이 들어오지 못하는 시장이다보니 업체가 5천여개에 달할 정도로 난립하고 영세사업자가 많다.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 피해 민원이 매우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침수차량 등을 정상으로 속여 판매하는 등 성능이나 상태가 점검 내용과 다른 경우가 가장 많고 허위매물을 올린 뒤 강매하거나 심지어 감급 협박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관련 소비자 상담은 성능조작 등 사기와 관련된 것이 많다"며 "이런 경우는 구제에 한계가 있어서 결국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고 판매가격도 높아 소비자 피해 정도가 다른 품목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응답자 76.4%가 국내 중고차시장은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평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인증 중고차 대전 전시장
▲인증 중고차 대전 전시장

◆ 여권 내에선 "대기업 진출 막아야"

현재 중고차 판매 시장은 기존 업체들의 생존권 위협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보호도 고려해야하는 곳이 됐다.

이런 가운데 여권 내에서는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대기업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을 촉구하며 대기업은 중고차가 아닌 미래차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중고차 판매업자들의 연간 중고차 판매 대수는 평균 115만대, 총 매매사원 수는 3만8000여명으로 1인당 월평균 판매 대수는 2.5대에 불과하다.

또한 한국소비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중고차 거래와 관련한 피해 현황 역시 2016년 총 300건에서 올 8월 기준 82건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소비자 후생 역시 좋아지고 있다고 이수진 의원실 측은 설명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이름이 오르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중고차 시장의 허위매물과 부당이익 등에 엄벌해야 한다면서도 대기업 진출을 반대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8월 중고차 업계와 가진 간담회를 통해 "불신이 너무 깊어 서로 의심하는 단계가 되면서 대기업에 중고차 시장을 허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극단적 의견이 있지만 대기업 진출을 공식 반대한다"며 "작은 문제가 있으면 작은 문제를 해결해야지 더 큰 문제를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다.

◆ 미국의 중고차 산업 성장 배경에는 고객 신뢰

우리나라에 비해 중고차 시장이 큰 미국의 경우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미국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매장에서 신차와 인증 중고차를 동시에 판매한다.

인증 중고차는 5∼6년 안팎 중고차를 정밀 점검, 수리하고 무상보증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신차급 중고차'다.

완성차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는 전체 중고차 시장에서 비율이 5∼6%에 불과하지만 다른 중고차의 품질을 높이는 효과도 낸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 중고차 딜러 연합회인 '전미독립자동차딜러협회(NIADA)'와 미국 최대 중고차 판매회사인 '카맥스' 등도 자체 성능점검 체계를 갖추고 인증 중고차를 판다.

또, 차량 이력과 잔존가치 등에 관한 정보가 풍부해서 여러 업체에서 시세를 확인하고 적정가에 중고차를 살 수 있다.

차량 이력 보고서는 무료로 제공된다. 완성차 브랜드는 가격이 비싼 카팩스 리포트를, 카맥스와 온라인 중고차 판매 1위 업체인 카바나는 오토첵의 보고서를 보여준다.

100년 이상 역사의 '켈리블루북(KBB)'과 '트루카', '애드먼즈닷컴' 등에서도 공신력 있는 시세와 잔존가치 정보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은 중고차 매매와 관련해서도 중고차 이력과 상태 정보 제공업체, 잔존가치와 시세 정보 제공업체, 재고와 고객 관리 등 통합 솔루션업체, 시험·인증 전문기관 등 다양한 사업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의 신뢰를 강화하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가진 간담회서 "중고자동차 판매의 주체인 매매사업자, 성능점검업체, 고객을 일선에서 만나는 딜러 등의 노력을 통해 시너지 창출방안을 마련해 시장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중고차 실매물을 조회할수 있는 곳에 대한 홍보 부족도 지적된다.

엄태권 경기도자동차매매사업조합장은 간담회서 "조합 내에 100% 실매물이 매입되고 판매되는 사이트가 있지만 포털사이트에 묻혀 홍보가 안되고 있다"면서 "사이트 홍보를 경기도가 조합과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 달라"고 이 지사에게 요청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문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