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바이든 시대 앞둔 중국, EU와 투자협정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시장을 앞세워 유럽연합(EU)와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EU 회원국들을 압박해 화웨이(華爲)를 포함한 중국 기업 등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여 왔던 터라 중국은 올해 EU와 투자 협정 체결이 미국의 포위망 탈출을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쳐왔다.

이번 협정은 유럽 기업이 중국에서 통신, 금융, 전기차 등 분야에서 전례 없는 시장 접근권을 얻는 게 골자다. 이는 유럽 기업들은 미국 기업보다 중국에서 더 유리한 투자 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EU는 이미 높은 수준의 대외 투자 개방도를 유지하고 있어 이번 협정은 EU가 중국에서 투자 혜택을 더 누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으로선 액면 그대로 보면 손해보는 장사일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이 내민 손을 EU가 잡은 셈이 돼서 중국으로선 동맹을 앞세운 미국의 예봉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

스웨덴이 지난 10월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에 화웨이와 ZTE(中興通訊·중싱통신)의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등 일부 EU 회원국들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 주재 EU 회원국 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 투자 협정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중국과 유럽 간에는 경쟁보다 협력, 이견보다 공통인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 점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국은 이미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피하고자 미국의 동맹인 한국, 일본까지 포함한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했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대한 관심도 표명한 상황이다.

유럽

▲중국에 실리 택한 EU…끝까지 관계 유지는 '미지수'

이번 중국과 EU의 투자 협정은 EU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심각한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U 내에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등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데다 중국과 EU 간의 깊은 유대감이 아닌 이해 관계를 따져 협상이 체결됐다는 점에서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최근 몇 년간 필리핀에 막대한 돈을 퍼부어 남중국해 문제를 가라앉히려고 공을 들였지만 결국에는 별 성과가 없었듯이 중국과 EU의 이번 투자 협정 또한 바이든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과 EU 간 투자협정은 EU 27개 회원국과 EU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협정의 실제 체결, 내지는 시행까지는 최소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 EU 의회의 경우 강제노역 금지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EU 동맹 강화를 추진하면서 중국의 코로나19 책임 공방을 제기하고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위구르족 인권 문제 등을 공론화할 경우 EU 의회 통과가 힘들어질 수 있다.

중국은 이번 합의에서 처음으로 환경·노동 관련 규정을 받아들였다. 중국은 강제노역에 반대하는 국제노동기구(ILO)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중국은 EU 투자협정 체결과 더불어 내년에는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을 앞세워 유럽에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확대하면서 EU의 대미 밀착을 견제할 방침이다.

'현대판 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는 중국 주도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무역·교통망을 연결해 경제 벨트를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등을 거점으로 유럽 전역으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올해 들어 11월 초까지 일대일로 사업의 상징인 중국-유럽 국제화물열차의 운행 편수가 1만1천 편을 넘어섰다면서 내년에도 중국의 유럽 물품 수입과 경제 지원 확대도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