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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號 방향타는…"공급은 신속히, 규제완화는 신중히"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새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보다는 주택 공급 계획 발표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 등 관가와 정치권에서는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을 두고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원 장관 후보자는 지난 10일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부동산 가격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부분은 매우 안정 위주, 신중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며 부동산 규제 완화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 후보자는 11일 출근길에도 "지나친 규제 완화나 시장에서 잘못된 시그널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신중할 것"이라며 규제 완화에 대한 신중론을 폈다.

이는 대선 기간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을 비판하면서 줄곧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해법으로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강조해온 것을 고려하면 정제된 발언들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제공]

최근 서울 강남권 등 재건축 단지 밀집 지역의 아파트값이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시 꿈틀대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재건축 규제를 풀어주는 식의 정책으로 부동산 불안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원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을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하면서 '시험대이자 독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부동산 문제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고, 또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과제임을 윤 당선인과 원 후보자 모두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정책을 신중하게 펼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관가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무리하게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시장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규제 완화의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 개정이 필요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선은 물론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하면 되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의 조치도 시장 분위기를 보며 신중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윤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주택 250만호 공급'의 전체적인 그림은 가능한 한 서둘러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공약은 수도권에만 130만∼150만호의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으로, 그 자체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주택 시장에서는 앞으로 충분한 양의 집이 공급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주택자의 수요를 진정시키셔 '패닉바잉'(공황구매)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한다.

윤 당선인은 250만호 공급 공약에서 신도시를 비롯한 공공택지 개발로 142만호(수도권 74만호), 재건축·재개발 47만호(수도권 30만5천호), 도심·역세권 복합개발 20만호(수도권 13만호),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복합개발 18만호(수도권 14만호), 소규모 정비사업 10만호(수도권 6만5천호), 매입약정 민간개발을 포함한 기타 방법 13만호(수도권 12만호) 등의 공급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공급 목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공택지 개발은 사실상 언제든 최종 검토만 거치면 발표할 수 있는 물량이다.

국토부가 이미 수도권 등 전국의 토지를 대상으로 공공택지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를 파악해 목록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책 결정권자가 '낙점'만 하면 바로 발표할 수 있다.

공공택지 발굴은 원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업무였으나 작년 9월 LH 혁신방안에 따라 국토부가 그 기능을 가져오면서 담당 부서인 공공주택추진단을 3개 과에서 5개 과로 확대하는 등 조직을 강화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미 공공택지 개발이 가능한 땅은 국토부가 모두 추려서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며 "언제든 리스트를 펴고 공급 물량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정책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이 주도하는 택지 개발과는 달리 윤 당선인이 공약한 재건축·재개발은 제도 개선을 통한 민간 주도 방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직후 제도 개선 방안을 시행하기보다는 제도 개선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시장이 안정되면 시행하는 쪽으로 시행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 수요가 몰리는 도심 공급과 관련해서는 서울시 등과 협업해 공급 시간표를 내놓을 전망이다.

이미 원 후보자가 기획위원장으로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토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도심주택 공급 실행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TF는 집값 폭등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을 위한 청년원가주택(30만호) 공급과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반값 주택인 '역세권 첫 집'(20만호) 공급 계획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실현을 위해 인수위와 함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며 "장관 후보자가 정해진 만큼 논의가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