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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신임 한은총재 취임…물가·가계부채·성장 '난제' 산적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21일 공식 취임했다.

앞으로 통화신용정책의 수장으로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10여 년 만에 4% 이상 뛴 물가도 잡아야 하고 코로나19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의 증가세도 확실하게 꺾어야 한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공급망 차질 등에 따른 성장 둔화도 방치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올해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속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역대급 인플레 압력…"인기 없더라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그널"

최근 갈수록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 대응은 물가안정을 제1 목표로 삼는 한은과 이 총재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숙제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4.1% 뛰었다. 4%대 상승률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은의 같은 달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값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9%에 이르렀다. 한 달 새 0.2%포인트 또 올랐는데, 2014년 4월(2.9%) 이후 7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다.

이 총재도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 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물가 상승 심리(기대인플레이션)가 올라가고 있어 인기는 없더라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0.25%포인트(p)가 넘는 기준금리 인상, 이른바 '빅 스텝'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관련 질문에 "아직 (빅 스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올라갈지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의 물가 억제 효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물가 상승이 금리로 조절할 수 있는 수요 측 요인이 아니라 전쟁, 공급 차질, 임금 등 비용과 생산 측 요인의 인플레이션인 만큼 성급한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는 잡지 못하고 자칫 경기 하강만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도 청문회에서 "지금 물가 상승의 많은 부분은 유가, 서플라이체인(공급망), 곡물가 등 공급 측면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를 올렸는데 왜 물가가 안 잡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금리로 반응하지 않으면 물가가 더 빠르게 올라갈 위험이 있어 조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용, 인사청문회 질의 답변
이창용, 인사청문회 질의 답변 [연합뉴스 제공]

▲가계빚 1862조원 '역대최대'…"고통스러워도 지금 안 막으면 더 큰 피해"

가계부채 측면에서도 이 총재는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의 '가계신용(빚)'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862조1천억원이다. 이 가운데 카드 사용액(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만 1천755조8천억원에 이른다. 모두 역대 최대 기록이다.

그는 청문회에 앞서 의원들의 서면질의에 "부채 증가 등에 따른 금융 불균형은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경제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경기·물가 상황에 맞춰 완화적 정책들을 정상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한은은 금리 조정 시그널(신호)을 통해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가계 부채관리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문회에서도 "만약 지금 막지 못하고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면,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작년 8월 이후) 네 차례 올렸는데, 지난해 12월 이후 가계대출이 약간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다가 정체 상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금리가 올라가면, 고통스럽지만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 상승률은 꺾일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 등과의 소통과 조율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는 부동산과도 관련돼 있어 금리로 시그널을 주는 건 중요하지만 한은의 금리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범정부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구조·재정·취약계층 문제 등을 고려해 종합적 솔루션(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기 하방 위험도 커져…"경기 크게 둔화하면 금리 인상 조율"

그렇다고 금통위가 물가와 가계부채에만 초점을 맞춰 지나치게 빨리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불안한 경기와 성장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총재도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빅 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 중국에서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으로 국내 물가의 상방 위험 뿐 아니라 경기의 하방 위험도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는 청문회 답변 과정에서 물가·가계부채 등을 고려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성장 추세가 이어진다면", "경기 속도가 크게 둔화하면 그때그때 조율하겠지만" 등의 조건과 전제를 달았다.

따라서 향후 이 총재와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상(통화정책 완화 정도 축소) 기조를 유지하되, 성장률 추이 등을 봐가며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이 총재는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중장기적 저성장 가능성도 여러 차례 제기한 만큼, 통화정책 결정과 한은의 연구 과정에서도 관련 우려가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장기 저성장을 초래할 우려가 커졌다"며 "관련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