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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 문답] 임금피크제 대법원 첫 판결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와 주목됩니다.

임금피크제는 성과연급제라고도 하는데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며,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인데요.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처음으로 제시됨에 따라 노사 간의 재논의 및 협상, 소송 등이 예상됩니다. 관련 내용들 정리해 봅니다. <편집자 주>

◆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온 것인가?

대법원 1부 (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A씨는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했습니다. B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는데요.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월 급여는 성과 평가가 최저 등급일 경우 약 93만원, 최고 등급일 경우 약 283만원이었습니다.

문제는 만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대비 실적 달성률이 임금 감액 대상인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보다 낮았다는 것입니다. 또 55세 이상 노동자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돼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도 없었습니다.

사건의 쟁점은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야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 때문에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4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였는데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사업주로 하여금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B연구원 측은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B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이번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보고,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같은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이 규정한 연령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기준을 설정했는데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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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 [연합뉴스 제공]

◆ 이번 판결에 대한 기업들과 노동계의 입장은 어떠한가?

일단 임금피크제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해 온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만약 임금피크제가 사라지게 되면 희망퇴직 등이 줄면서 정년을 채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이에 따라 경영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임금피크제의 본질과 법의 취지 및 산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도외시한 판결이라면서, 향후 고령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 기회 감소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이와 함께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의 경직된 임금체계 실태와 고용 환경을 고려해 고령자의 갑작스러운 실직을 예방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경총 측은 법은 60세 정년 연장과 함께 그 대안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하도록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겠다는 입장입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금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지속돼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기를 바란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또한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이 제도가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는 미미했으며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만 삭감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층의 실업을 완화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고령층의 숙련된 업무 능력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다만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 정부는 이번 판결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례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이 아닌 정년유지형이기 때문인데요.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정년유지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등으로 다양하고, 사업장별로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근로자에게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으로, 이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도 임금이 깎인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정년연장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년연장형은 퇴직을 앞둔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도 삭감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유효하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효력 인정 여부는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여부, 감액된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