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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독·프, EU 지배" 정면 비판

사법부 독립 침해로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어온 폴란드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EU의 운영 방식이 '과두 체제'라며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독일 일간지 디벨트 17일자에 실린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것처럼 EU 내부의 제국주의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EU의 민주주의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덜 강력한 EU 회원국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러시아의 위험성을 경고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압도하는 EU가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한 폴란드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EU 조약상 모든 회원국은 평등하다"고 지적하고 공동선과 평등을 EU 원칙의 최우선 순위로 되돌려 놓도록 개혁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EU 정책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주체는 EU 기관이 아니라 EU 회원국이어야 한다. 강한 자의 지배가 아니라 합의 추구가 협력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인도적 지원의 거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폴란드는 러시아의 '신제국주의'가 동유럽 전체로 확산할 것을 우려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러시아 제국의 침략을 경험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항하는 서방 세력의 최전선이 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력한 연대를 표명하고 군사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면서 존재감이 부쩍 커진 터다.

폴란드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8억1천만 달러(약 2조3천억 원)어치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 지원한 무기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수송로를 거쳐 주요 전선으로 공급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도 가장 많이 수용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2월 24일 개전 이후 폴란드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은 450만 명을 넘었다. 이중 절반가량이 귀국하고 아직 200만 명 이상이 폴란드에 남아 있다.

이런 정세변화 속에 EU 내에서 목소리가 커진 폴란드가 법치주의 파괴를 이유로 폴란드를 압박하는 EU에 역공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EU 집행위원회는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폴란드에 대해 거액의 벌금 부과를 경고했다.

EU는 또 폴란드에 배정된 360억 유로(약 49조 원)의 '코로나 회복 지원금' 지급을 유보했다.

폴란드 정부는 사법부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개혁안을 EU 측에 제의했지만, EU는 폴란드의 사법 개혁안이 EU의 개선 요구에 못 미친다는 입장이다.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EU 조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EU의 경제·정치적 통합을 지지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극우 성향의 법과 정의당(PiS)이 집권하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