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납품단가 연동제, 중소기업계와 KDI는 의견 차이

가격상승분 납품단가, 판매가 전부 반영한 중소기업 10곳중 두곳 불과

중소기업계와 한국개발연구원(KDI)가 납품단가 연동제를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9월 7일부터 20일까지 중소기업 500개사에게 물어본 결과 10개사 중 8개사(72.8%)는 작년보다 비싼 가격으로 원자재를 구입하고 있으나, 가격상승분을 납품단가 또는 판매가에 전부 반영한 중소기업의 비율은 2.5%에 불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계가 납품 단가 연동제의 법제화를 주장하면서도 KDI가 의문을 보인 이유를 알아본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게 하는 제도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채택해 추진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납품단가 연동제(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현대중공업, KT 등 대기업 29곳과 중견기업 7곳, 중소기업 5곳 등 총 41곳이 시범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 추진 2022.09.14
9월 14일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최한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 협약식이 열렸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시범운영 사업 참여 기업들은 앞으로 납품대금 연동이 적용되는 물품명과 가격 기준지표 등이 기재된 특별약정서로 계약을 맺는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중기부는 시범운영 과정을 분석해 연동제가 현장에 안착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 제도가 현장에 확산돼 중소기업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에 대해 "우리나라의 하도급거래 관계가 '위험전가'(risk-shifting)에서 '위험분담'(risk-sharing)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계는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9일 논평을 통해 "지난 14년간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도 운영을 통해 대기업의 자율과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그 한계가 분명함이 이미 증명됐다"며 "지금은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를 통한 제도 확산에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를 둘러싼 상황도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공급망 차질 또한 장기화 됐고 이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원자재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원자재가격 급등'(76.6%)이 가장 많았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도 전날 롯데호텔 제주에서 가진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중소기업은 요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인력난 등 4중고에 원자재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2022.09.28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 [사진=중기중앙회 제공]

법제화가 지지부진한데는 해당 제도를 적용할 업종과, 범위, 연동 비율 수준등이 쟁점이기 때문이다. 이영 장관도 지난 8월 브리핑에서 "중소벤처기업부 내에서도 고민이 끝나지 않은 부분이 업종이 굉장히 다양하고 수·위탁 거래의 단계도 굉장히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없는건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정기국회 최우선 10대 법안 중 하나로 납품대금연동제를 도입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을 들었고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납품단가 연동제를 당의 7대 우선 추진 과제로 들었다.

양당이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는 중첩된 만큼 빠른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국책연구소인 KDI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내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화령 연구위원은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를 통해 "모든 상황에서 단가 연동조항이 최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단가연동조항이 강제되면 시장참여자들의 선택이 왜곡돼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사업구조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청이 하청에 맡기던 일까지 직접 하기로 결정해 수급사업자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갑'인 원사업자가 '을'인 수급사업자에게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을 분담하는 대가로 과도한 단가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해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이 제시한 대안은 표준적인 연동계약서 제공,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나 선물 등 금융상품을 개발 등이다.

다만 중소기업계는 KDI 의견에 대해 반문한다. 김 회장은 "납품단가 연동제는 '거래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라며 "여야가 민생법안으로 합의한 내용에 대해 그런 의견을 낸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기벤처부 대통령 어무보고 2022.07.12
7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중기부는 하반기 중점 과제로 납품단가 연동제 제도화 추진등을 담았다. [사진=대통령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