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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개방경제의 이중성, 대외 악재에 무너지는 한국 증시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처음 개장한 8일 아시아 증시의 향방은 한 주 동안의 세계 증시의 가늠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이날 아시아 증시에서 일본(2.1%), 호주·뉴질랜드(이상 2.7%) 등은 2%대의 하락에 그쳤다. 물론 큰 폭의 하락이었지만, 신용등급 강등의 파장을 감안하면 또 그다지 큰 폭의 하락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유독 무려 3.8%나 떨어지면서 다른 아시아의 증시보다 큰 낙폭을 보였다.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으로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보게 된 중국의 증시 하락폭(3.7%)도 한국보다는 작았다. 미국발 악재로 인해서 가장 큰 타격과 피해를 입은 것이 한국 증시였던 것이다. 이번 뿐만 아니라 한국의 증시는 대외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망신창이가 됐다.

한국 증시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대외 경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개방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경제의 금융 개방도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보다 커졌다. 1997년 당시 사상 초유의 IMF로 국가 부도를 맞은 한국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신 IMF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해야 했고, 특히 IMF 사태의 주범 가운데 하나였던 부실한 은행에 대한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했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외환위기 때 금융 부문의 급격한 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영·미식 체제가 도입됐다"며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닌데 선진국처럼 금융 자본거래를 대폭 자유화하면서 위기에 취약한 금융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금융개방으로 인해 개인이 자유롭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된 대신 정부의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이 최소화돼 위기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개방된 금융시장에서는 정부보다 개인이나 금융회사의 건강성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대외 악재로 인해 증시가 폭락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일본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1.0%로 대만(32.0%)에 이어 아시아 2위였다. 따라서 대외 악재가 발생할 때면 항상 외국인들이 대거 자금을 빼가 주식이 폭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금융거래로 인해 외국의 자본이 많이 들어와 투자가 활성화되는 장점이 있지만, 외국인들이 순매도에 나설 경우에는 주식시장이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대외 악재로부터 금융시장을 지키고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금융 부문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GDP(국내총생산) 대비 36%로 아시아 평균(65%)의 절반 수준인 외환보유액을 더 끌어올려 외국인들이 외화를 빼나가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유동성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국제 공조를 강화해 단기 투기 자금 거래도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외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 증시가 큰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있어서 취약점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