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금배지' 대신 '실리' 택한 전직 의원들, 기초단체장 선거서 희비 엇갈렸다

음영태 기자
'금배지' 대신 '실리' 택한 전직 의원들, 기초단체장 선거서 희비 엇갈렸다
©연합뉴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 출신 후보들이 대거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며 '하향 지원' 추세가 뚜렷해진 가운데 소속 정당과 지역구 특성에 따라 당락이 극명하게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신상진 성남시장과 이현재 하남시장 등이 수성에 성공하며 여권의 강세를 증명했으나, 김병욱·주광덕 후보 등 거물급 인사들은 고배를 마셨다.

국회의원이 공무원 급수 상 하위 직급인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현상은 지방분권 확대와 특례시 출범에 따른 실질적 권한 강화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 국회의원 경력을 발판 삼아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실무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직 의원들은 지역 밀착형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을 공략했으나 유권자들의 선택은 소속 정당의 지지세와 개인의 지역 기반에 따라 냉정하게 나뉘었다.

국민의힘 소속 전직 의원들은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상당수 생환하며 여당 우세의 흐름을 주도했다. 4선 의원 출신인 신상진 당선인은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던 성남시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대장동 의혹 이후 변화된 지역 민심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경기 하남의 이현재 당선인과 용인의 이상일 당선인 역시 정책위의장 등 중량감 있는 경력을 바탕으로 시정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대구 달서구청장 선거에 나선 김용판 당선인 또한 21대 국회의원 경력을 앞세워 무난히 승기를 잡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소수 정당 소속 전직 의원들은 험지 출마와 당내 경합 속에서 고전하며 상반된 결과를 받아 들었다. 충북 청주에서는 21대 의원을 지낸 이장섭 당선인이 국민의힘 후보를 꺾고 당선되며 체면을 세웠으나 경기 성남에 출마한 김병욱 후보는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친명계 핵심 인사인 김 후보의 패배는 성남시의 정치적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남 광양의 정인화 후보와 경남 하동의 제윤경 후보 등도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인물은 전남 목포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무소속 손혜원 후보다. 서울 마포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손 당선인은 기초단체장도 아닌 기초의원으로 체급을 크게 낮추는 승부수를 던져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중앙 정치인이 지역구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정치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며 향후 목포 지역 정가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배경이 반드시 당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번 선거를 통해 재확인됐다. 조국혁신당 강동원 남원시장 후보와 진보당 강성희 전주시장 후보는 민주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하며 제3지대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유권자들이 후보의 과거 명성보다는 거대 정당의 조직력과 지역 내 실질적인 영향력을 더 높게 평가한 결과로 해석된다. 중앙 정치 무대의 인지도가 지역 행정 전문가로서의 신뢰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수도권 요충지에서 재선을 노렸던 중진급 전직 의원들의 연쇄 낙선은 이번 지방선거의 또 다른 이변으로 기록됐다. 종로구청장 재선에 도전한 정문헌 후보는 불과 3,959표 차이(5.05%p)로 고배를 마시며 정치 1번지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서대문의 이성헌 후보와 남양주의 주광덕 후보 역시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중량감이 무색하게 재선 가도에서 멈춰 섰다. 천안시장에 도전한 박찬우 후보 또한 2만여 표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며 지역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기초단체장 진출이 지역 정치 신인들의 등용문을 좁히고 지방 자치를 중앙 정치의 연장선으로 변질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정치적 중량감을 앞세운 '낙하산'식 출마가 지역의 자생적 정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하지만 행정 전문가들은 중앙 인맥과 정책 역량을 갖춘 인사의 유입이 지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반박하며 실리 중심의 선택을 옹호한다.

한 정치학 전문가는 "전직 의원들의 기초단체장 도전은 지방 자치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현상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유권자들은 이제 단순한 경력보다는 지역 현안을 해결할 실무적 역량과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치인들이 과거의 권위를 내려놓고 지역 주민의 삶에 밀착된 행정을 펼쳐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시사한다.

지방선거 이후 기초자치단체로 자리를 옮긴 전직 의원들이 보여줄 행정 성적표는 향후 정치권의 인력 이동 경로에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들이 중앙 정치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발전을 이끌어낸다면 '하향 지원'은 새로운 정치적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낙선한 인사들의 향후 행보와 지역 정계 개편 방향에 따라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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