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기준금리 동결 속 성장·물가 딜레마 직면

윤근일 기자
기준금리 동결 속 성장·물가 딜레마 직면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 3연속 금리 동결에도 국내 통화정책은 복잡한 셈법에 직면했다. 중동 전쟁 불확실성과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급반등이 하반기 금리 인상론을 부상시킨다. 한국은행은 다음 달 통화정책방향 결정에서 신중한 접근을 보일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세 차례 연속 동결한 가운데 한국의 통화정책 당국도 복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중동 전쟁의 전개 방향과 그에 따른 글로벌 경제 충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장과 물가라는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다. 다음 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결정은 '매파적 동결'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예상치 못한 급반등과 지속적인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맞물리면서, 한국은행이 당장은 동결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글로벌 통화정책

연준은 28일부터 29일(현지 시각) 진행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0∼3.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9월, 10월, 12월 세 차례 연속 인하된 이후 올해 1월, 3월, 4월까지 동결 기조를 이어가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연준은 이번 금리 동결 배경으로 비교적 견조한 성장 지표와 함께 중동 전쟁 여파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점을 주요하게 고려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은 높은 수준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최근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반영한 것"이라고 진단하며,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는 경제 전망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지표들은 경제 활동이 견조한 속도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일자리 증가는 평균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고 실업률은 최근 몇 달간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준 결정에서는 4명의 위원이 기준금리 동결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표명했는데, 이는 1992년 10월 이후 약 34년 만에 가장 많은 반대 의견이었다.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은 중동 전쟁의 전개 양상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졌음을 시사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번 회의를 끝으로 임기를 마친다. 이날 FOMC 결과 발표 직전 미 연방 상원 은행위원회는 케빈 워시 연준 의장 후보 인준안을 의결하며 차기 연준 수장 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은 국내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 인플레이션과 불확실성 증대

한국은행 금통위 또한 다음 달 28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8연속 동결을 결정할 것으로 광범위하게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현재 상황을 중동 전쟁 영향으로 인해 성장은 하방 압력을, 물가는 상방 압력을 받는 교차 국면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요구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의미하며, 섣불리 어느 한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8.80(2020년=100)으로 전년 대비 2.2% 상승했다. 특히 국제 유가 급등이 석유류 가격을 9.9% 끌어올려 전체 물가를 0.39%포인트(p) 상승시키는 데 기여했다. 생산자물가지수 또한 125.24로 전월 대비 1.6% 상승했으며, 석탄 및 석유제품이 31.9% 오르며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57.7%)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4월 이후 소비자물가는 국제 유가의 큰 폭 상승의 영향으로 오름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물가 불안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 심리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0으로 전월보다 5.1p 하락하며,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던 2024년 12월(-12.7p) 이후 최대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집행하며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추경 집행이 올해 성장률을 0.2%p 정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10일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중동 지역의 상황, 경제의 성장 경로 및 물가 추이를 지켜보고 향후 기준금리 변경 여부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언급했으며, 다른 위원은 "일단은 '두고 보자'(wait-and-see)는 자세로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하며 관망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국내 경제 지표 교차

시장의 관심은 이미 금통위의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쏠리고 있다. 물가 안정이 통화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부각되는 가운데, 예상보다 개선된 성장 전망이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당초 한국은행은 지난달 10일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국내 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조 및 추경에도 에너지 가격 상승 및 공급 차질 영향으로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2.0%)를 하회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10여 일 후 발표된 1분기 성장률 속보치는 1.7%에 달해, 한국은행의 기존 전망치(0.9%)의 두 배에 가까운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중동 전쟁의 영향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 호조가 국내 경제 성장을 강력하게 견인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러한 예상 밖의 성장률 지표에 JP모건은 3.0%, 씨티는 2.9%, 골드만삭스는 2.5%, 노무라는 2.4%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일제히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금리 인상론에 무게를 더했다. 한국은행이 다음 달 28일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기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으며, 오히려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열린 상황이다. 이러한 경제 상황 변화 속에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어떤 기조를 나타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신 총재는 지난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와 성장이 상충하면 항상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물가가, 특히 한국처럼 유가에 이렇게 민감한 경제에서는 유가 충격이 상당히 큰 만큼 물가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혀 물가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기준금리 결정까지 약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중동 전쟁 상황의 변화가 금통위의 최종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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