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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유행병' 통념 깨졌다… 고소득국 둔화 속 저소득국은 '폭주'

이겨례 기자
'비만 유행병' 통념 깨졌다… 고소득국 둔화 속 저소득국은 '폭주'
©연합뉴스

 

고소득 국가의 비만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일부 감소하는 반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비만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국가 간 보건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1980년부터 2024년까지 200개국 2억 3,20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만은 전 지구적 유행병이라기보다 국가별 정책과 환경에 따른 가변적 현상임이 드러났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연구팀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하며 국가별 맞춤형 공중보건 정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전 세계 2억 3,200만 명의 체질량지수(BMI)를 추적한 결과,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 사이의 비만 유병률 추이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마지드 에자티 교수팀은 지난 44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소득 국가의 비만 증가세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음을 확인했다. 반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비만 증가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며 새로운 보건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5세부터 19세 사이의 아동 및 청소년 7,000만 명과 20세 이상 성인 1억 6,200만 명의 키와 몸무게 데이터를 포괄했다. 연구팀은 단순 유병률을 넘어 연간 변화량인 '비만 증가 속도(velocity of obesity)'를 핵심 지표로 설정하여 국가별 추세를 정밀 비교했다. 분석 결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만이 증가했으나, 그 양상은 국가의 경제 수준과 연령, 성별에 따라 판이한 궤적을 그렸다.

서유럽과 북미 등 고소득 국가들은 20세기 말까지 비만율이 급격히 상승했으나 이후 정체되거나 일부 감소하는 조짐을 보였다. 1990년경 덴마크에서 가장 먼저 증가세 둔화가 관찰된 이후 아이슬란드, 스위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이 같은 흐름이 확산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계층에서 먼저 증가세가 꺾인 뒤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성인층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포착됐다.

고소득 국가 내에서도 안정화된 비만율의 절대적인 수준은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성인 비만 유병률 11~23%, 청소년 4~15% 수준에서 정체된 반면,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들은 성인 25~43%, 청소년 7~23%라는 높은 수치에서 멈춰 섰다. 이는 같은 경제권이라 하더라도 식습관과 생활 양식, 보건 체계에 따라 지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비만 유병률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루마니아와 체코 등 중앙유럽 일부 국가와 남미의 브라질 등지에서는 성인 비만 유병률이 이미 30~40% 선에 도달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베트남은 2~3% 수준을 유지한 반면 태국과 브루나이는 20~40%에 육박하는 등 같은 지역 내에서도 불균형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국가 간 차이가 단순히 도시화나 경제 성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건강한 식품에 대한 접근성과 가격, 교육 수준, 사회적 규범, 학교 급식 프로그램 등이 비만율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소득 국가는 경제 성장과 함께 식품 상업화와 노동의 기계화가 진행되었으나, 영양 불균형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비만이 확산했다.

고소득 국가의 경우 건강 정보 제공과 운동 권장 정책이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는 계층 간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고가인 건강 식품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계층은 비만율이 낮아진 반면, 가격 부담을 느끼는 저소득층은 여전히 비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공중보건 정책이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경제적 접근성 개선에 집중해야 함을 보여준다.

최근 주목받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아직 이번 연구의 장기 추세 데이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향후 약물의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고 접근성이 개선된다면 비만 추세를 변화시킬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약물 치료보다 근본적인 식생활 환경 개선과 정책적 개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마지드 에자티 교수는 비만을 일률적인 유행병으로 규정하는 시각에 경종을 울리며 국가별 맞춤형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비만 추세가 국가와 연령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은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또한 "적절한 정책 개입을 통해 비만 증가를 멈추거나 되돌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연구가 체질량지수(BMI)라는 단순 지표에 의존하여 실제 체지방률이나 근육량을 완벽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또한 국가별 통계 수집 방식의 차이가 데이터의 정밀도를 일부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그러나 2억 명 이상의 방대한 표본을 바탕으로 한 이번 분석은 거시적인 글로벌 보건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독보적인 권위를 가진다.

향후 전 세계 비만 정책은 보편적 접근에서 탈피하여 각국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한 정밀 보건 체계로 전환될 전망이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저렴하고 건강한 식품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며, 고소득 국가에서는 계층 간 건강 격차 해소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보건 당국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별 비만 증가 속도에 맞춘 차별화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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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유행병' 통념 깨졌다… 고소득국 둔화 속 저소득국은 '폭주' : 정치/사회 : 재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