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자금난과 규제 장벽에 갇힌 혁신 동력, 벤처기업 57% "돈줄 막혀 생존 위협"

윤근일 기자
자금난과 규제 장벽에 갇힌 혁신 동력, 벤처기업 57%
©연합뉴스

 

국내 중소벤처기업 10곳 중 6곳이 경영상 가장 큰 걸림돌로 자금조달 곤란을 지목하며 자본 시장의 경색을 호소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가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7.4%가 자금난을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았으며, 절반에 가까운 기업들은 한국의 규제 환경이 해외 주요국보다 가혹하다고 평가했다.

국내 벤처기업들이 고금리와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심각한 자금 조달의 벽에 부딪히며 혁신 성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벤처·스타트업 1,055개사 중 절반을 상회하는 57.4%가 지난해 경영 과정에서 겪은 가장 치명적인 어려움으로 자금조달 곤란을 선정했다. 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유동성 공급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며 자본 효율성의 저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금난 외에도 인력과 판로 확보 등 경영 전반에 걸친 다각적인 고충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조달에 이어 인력 채용 및 유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이 40.6%에 달했으며, 기술 개발 및 사업화가 36.9%, 판로 확보가 35.4%로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상용화하고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필수 자원인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의 직접적인 금융 지원 확대와 연구개발 분야의 집중적인 투자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영 애로 해소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응답자의 49.6%가 정책금융 확대를 꼽았으며, 연구개발(R&D) 및 사업화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47.3%에 달했다. 이는 시장의 자생적 자금 공급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업계의 판단을 반영한다.

한국의 신산업 규제 환경은 글로벌 표준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과 비교한 규제 부담 정도를 묻는 질문에 기업의 49.5%는 한국의 규제 부담이 더 크다고 응답했다. 규제가 비슷하다는 답변은 33.4%에 그쳤고, 한국의 규제가 더 작다는 응답은 17.2%에 불과하여 국내 규제 환경의 후진성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 애로의 근본적인 원인은 불합리한 기준과 행정적 지연에 집중되어 있다. 규제요건 및 기준이 과도하거나 불합리하다는 지적과 함께 인허가 및 심사 지연을 꼽은 응답이 각각 17.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규제 법령의 공백이나 불명확성을 원인으로 지목한 비율도 16.5%에 달해 법치주의적 명확성이 결여된 행정 환경이 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단순히 심리적 부담을 넘어 실제 기업의 매출 손실과 사업 기회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 신산업 규제로 인한 구체적인 영향으로는 사업 착수 및 출시 지연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36.4%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매출 기회 상실이 31.8%, 인허가 및 인증 비용 증가가 30.2%, 자금 흐름 악화가 21.5%를 기록하며 규제가 혁신 기업의 현금 흐름까지 압박하는 양상이다.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전 주기적인 지원 체계와 자금 공급의 유연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우선 과제로 25.5%의 기업이 투자와 금융 등 자금조달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창업부터 성장, 재도전에 이르는 전 주기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13.9%, R&D 및 사업화 지원은 12.1%로 조사되어 단계별 맞춤형 정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향후 사업 전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대와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른 신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올해 사업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예측한 응답자는 39.8%로 나쁠 것이라는 예측인 20.9%보다 높았으나, 전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도 39.3%에 달했다. 이는 기업들이 성장 가능성에는 기대를 걸면서도 고착화된 규제와 자금난 등 거시적 환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 일각에서는 규제 샌드박스와 대대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실제 일부 업종에서는 규제 완화의 수혜를 입어 신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 자금 집행 규모도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현장의 중소 벤처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기에는 행정적 시차가 존재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신산업 분야에서 기존 산업 중심 규제 적용에 따른 제도적 괴리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실질적인 규제 애로와 정책 수요를 파악하여 향후 정책 과제 도출에 활용할 계획이다. 정부와 입법부는 기업들의 자금 흐름을 막는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고 시장 중심의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금난과#규제#장벽에#갇힌#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