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전환(AX) 시대의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국내 보관을 넘어 국경 간 이동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중 법학자들은 데이터를 자국 내에 묶어두는 물리적 현지화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양국 간 '관리된 이전(managed transfer)'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확산에 따라 데이터 주권의 개념이 물리적 저장 위치 중심에서 실질적인 통제권 확보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데이터의 가치는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인공지능 모델 학습을 위한 결합과 정제 그리고 라벨링 과정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전환 시대에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국내에 묶어두는 기존의 폐쇄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우 인하대 AI·데이터법학과 초빙교수는 제2회 한중 인공지능 법제 국제 학술대회에서 데이터 주권의 새로운 정의를 내놓았다. 이 교수는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데이터 현지화가 아니라 데이터 이전을 통제할 수 있는 규범과 거버넌스 체계의 문제"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모델 고도화 과정에서 데이터가 임베딩이나 모델 가중치 그리고 합성 데이터로 변환되는 특성을 고려할 때 기존의 현지화 방식으로는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논리다.
기존 데이터 현지화 정책은 데이터의 역외 유출을 막는 데 집중했으나 이는 오히려 글로벌 협력과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는 수집 이후 고도의 가공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므로 저장 자체에 매몰된 규제는 실효성이 낮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데이터의 물리적 위치만을 강제하는 방식은 인공지능 시대의 데이터 흐름과 배치되는 측면이 크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중 법학계는 '관리된 이전' 방식의 협력 모델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안했다. 이는 양국의 법제를 일방적으로 통일하거나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무리한 접근 대신 절차적 상호운용성을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전략이다. 데이터의 기능과 위험 수준에 따라 공통의 분류 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한 이동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력 모델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운영 데이터부터 시작하여 특정 산업 분야의 파일럿 모델로 확대해 나가는 로드맵을 따른다. 초기 단계에서는 위험성이 낮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양국 간 신뢰를 구축하고 점진적으로 데이터 공유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은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인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는 효율적인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과 중국의 주요 학술 기관들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인공지능 시대의 법적 쟁점을 폭넓게 다루었다. 중국 심천대 혁신발전법치연구원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그리고 전북대 동북아법연구소와 인하대 AI·데이터법학과가 힘을 모았다. 행사에서는 데이터 주권 외에도 알고리즘과 플랫폼 그리고 개인정보 침해 등 인공지능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법·제도적 이슈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
기조발제에 나선 왕샤오예 심천대 명예원장과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는 시장 질서 유지와 플랫폼 규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왕 명예원장은 알고리즘을 활용한 개인화 가격 책정의 법률적 문제와 경제적 영향을 분석했으며 권 명예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남용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공정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법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다.
행사 현장에서는 학술적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연구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전북대 동북아법연구소와 인하대 AI·데이터법학과 그리고 심천대 혁신발전법치연구원은 학술 및 연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지난해 중국 심천에서 열린 제1회 대회에 이어 한중 법학 교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다만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취약점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관리된 이전 모델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양국의 보안 표준이 상호 검증되어야 하며 데이터 유출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적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데이터 개방은 오히려 국가적 자산의 손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향후 한중 법학계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법제 교류의 구심점 역할을 강화할 전망이다. 정영진 인하대 주임교수는 이번 대회가 한중 법학 교류의 기반을 다지는 자리였음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협력 의지를 피력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법과 제도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양국의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소통과 공동 연구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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