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벼랑 끝 내몰린 1000만 알뜰폰, 이통3사 '저가 5G' 공세에 존립 기반 흔들린다

윤근일 기자
벼랑 끝 내몰린 1000만 알뜰폰, 이통3사 '저가 5G' 공세에 존립 기반 흔들린다
©연합뉴스

 

정부의 가계 통신비 인하 압박으로 이동통신 3사가 중저가 5G 요금제를 잇달아 출시하면서 알뜰폰 업계의 핵심 경쟁력인 가격 우위가 사실상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1,0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한 알뜰폰은 이통사의 요금 하한선 하락과 결합 할인 공세에 밀려 수익성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24년 하반기 기준 이통3사 자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47%에 육박하는 가운데 중소 사업자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

정부의 기본통신권 보장 기조가 이동통신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며 알뜰폰 업계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가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저가 요금제 라인업을 강화함에 따라 알뜰폰의 유일한 무기였던 가격 차별성이 급격히 희석되는 추세다. 통신 시장의 효율성과 자율 경쟁을 강조해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인위적인 요금 개입이 오히려 알뜰폰 생태계의 자생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알뜰폰 가입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서며 외형적 성장을 이뤘으나 내부적인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다. 지난해 4월 발생한 특정 통신사의 유심 해킹 사고 이후 이탈 가입자를 흡수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던 동력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정부가 그간 전파사용료 감면과 도매대가 인하를 통해 시장을 지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이 독자적인 서비스 경쟁력을 구축하기보다는 정책적 혜택에 안주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 알뜰폰 시장의 주력 상품은 월 2만 원에서 3만 원대 사이의 LTE 무제한 요금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가 유사한 가격대의 5G 저가 요금제를 늘리고 데이터 소진 시에도 저속으로 이용 가능한 데이터 안심옵션을 기본 적용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가격이라면 네트워크 품질이 안정적이고 고객 서비스가 우수한 대형 통신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인프라의 격차는 알뜰폰의 경쟁력을 더욱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동통신 3사는 가족 결합 할인, 멤버십 포인트, 인터넷 및 IPTV 결합 상품 등 강력한 락인 효과를 제공하는 반면 알뜰폰은 이러한 서비스 기반이 원천적으로 취약하다. 통신업계에서는 동일한 데이터 제공량을 기준으로 알뜰폰 요금제가 대형 통신사보다 최소 30% 이상 저렴해야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통사의 요금 하한선이 낮아질수록 알뜰폰은 수익성을 포기하고 가격을 더 낮추거나 무리하게 데이터를 늘려야 하는 출혈 경쟁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정부 정책의 모순성도 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정부는 알뜰폰 활성화를 통해 통신 시장의 과점 체제를 깨뜨리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거대 이통사들에게 요금 인하를 강하게 압박하는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불일치는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민간 사업자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알뜰폰 활성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이통3사의 요금 인하도 압박하는 것은 정책 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0원 요금제' 경쟁은 알뜰폰 생태계를 더욱 황폐화하고 있다. 거대 통신사의 자본력을 등에 업은 알뜰폰 자회사들은 현금성 사은품과 포인트 제공을 앞세워 사실상 공짜 요금제에 가까운 마케팅을 펼치며 가입자를 끌어모은다. 이에 대응해 중소 사업자들도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초저가 프로모션으로 맞불을 놓고 있으나 이는 결국 시장 전체의 수익성 악화와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뿐이다.

이통3사 자회사의 시장 지배력 확대는 알뜰폰 도입 취지인 '건전한 경쟁 촉진'을 무색하게 만든다. 2024년 하반기 기준 이통사 자회사의 점유율이 47%에 달한다는 사실은 대형 통신사들이 알뜰폰을 단순한 가입자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이 자본력과 마케팅 파워에서 밀려 고사 위기에 처할 경우 통신 시장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다시 대형사 중심의 과점 체제가 공고해질 위험이 크다.

일각에서는 알뜰폰 업계의 위기가 자생력 확보를 소홀히 한 결과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의 보조금과 지원 정책에 의존하는 천편일률적인 사업 모델로는 급변하는 통신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논리다. 시장 질서의 관점에서 볼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실 사업자의 퇴출은 불가피하며 이를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뜰폰 업계가 단순한 가격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타깃 특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미국의 컨슈머 셀룰러가 시니어 계층을 공략해 성공한 사례나 영국의 기프가프가 커뮤니티 기반으로 충성 고객을 확보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특정 수요층에 최적화된 맞춤형 서비스와 콘텐츠를 결합함으로써 대형 통신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금융권과 플랫폼 기업 등 이종 산업과의 융합을 통한 체급 키우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모바일이나 KB금융그룹의 리브모바일 사례처럼 강력한 플랫폼과 자본력을 갖춘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여 이통3사와의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중소 사업자 간의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독자적인 전산망과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구조조정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향후 통신 시장은 단순한 통신망 제공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융합 서비스 경쟁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알뜰폰 업계가 정부의 보호막 아래 안주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1,000만 가입자 시대는 정점이 아닌 몰락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정부 역시 시장의 자율적 가격 결정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중소 사업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정책적 세밀함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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