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패혈증 징후 간과한 응급실 퇴원 조치, 법원 "병원 측 1억 원 배상 책임 인정"

이겨례 기자
패혈증 징후 간과한 응급실 퇴원 조치, 법원
©연합뉴스

 

응급 환자의 패혈증 징후를 간과하고 무리하게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병원 측에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청주지법은 환자의 활력 징후 확인을 소홀히 한 과실을 인정하여 배우자와 자녀 등 유족에게 총 1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의료진의 경과 관찰 의무와 퇴원 결정의 신중함을 강조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청주지법 민사13부(김동빈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족이 청주 소재 모 종합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병원이 A씨의 배우자에게 4,200만 원, 자녀 2명에게 각 2,700여만 원, 부친에게 3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이 취해야 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의료 현장의 효율성보다 환자의 생명 안전권이 우선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사건은 2022년 2월 6일 오전 40대 환자 A씨가 극심한 복통으로 해당 병원 응급실을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의료진은 흉부 및 복부 엑스레이와 복부 CT 검사를 실시한 뒤 급성 장폐색 외에 특이사항이 없다는 소견을 내리고 외래 진료를 안내하며 A씨를 퇴원시켰다. 하지만 퇴원 당일 밤 통증이 전혀 호전되지 않은 A씨는 다시 해당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야만 했다. 초기 진단 과정에서 환자의 위중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재내원한 A씨는 이튿날 추가 검사를 통해 장 천공 의심 판정을 받고 긴급 수술대에 올랐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 후 불안정한 활력 징후를 보이던 A씨는 결국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유족 측은 1차 내원 당시 이미 입원 치료가 필요한 위중한 상태였음에도 병원이 이를 간과하고 강행한 퇴원 조치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의 안일한 대응이 한 가정의 가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주장이다.

병원 측은 소송 과정에서 첫 내원 당시 입원 치료를 권유했으나 환자가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퇴원을 결정했다는 논리를 펼치며 맞섰다. 당시 환자의 임상 증상과 검사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의료진의 진단과 퇴원 과정에는 법적, 의학적 결함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병원은 의료진의 판단이 당시 가용 가능한 정보 내에서 최선이었음을 강조하며 병원 시스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정에서 제시된 객관적인 데이터와 증거들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재판부는 병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차 내원 당시 검사 수치가 이미 패혈증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다는 점을 핵심 과실로 지목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함을 인지하고 즉각 입원시켜 경과를 관찰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퇴원 조치 과정에서 체온만 측정했을 뿐 혈압, 맥박, 호흡 등 기초적인 신체 상태 확인조차 누락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는 표준 의료 절차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법원은 감정의의 전문적 소견을 인용하며 의료진의 부주의가 환자의 사망이라는 악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재판부는 "감정의 역시 A씨의 검사 결과를 봤을 때 입원 조치를 취해 추가 검사나 보존적 치료를 했다면 사망이라는 악결과를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고 판시했다. 이는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보다 객관적인 검사 데이터에 근거한 대응이 우선되어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전문가의 권위 있는 진단이 재판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환자의 자발적 퇴원 주장 역시 객관적인 증빙 자료 부족으로 인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통상 환자가 의료진의 권고를 무시하고 퇴원할 경우 작성하는 '퇴원서약서'가 당시 작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법원은 병원 측이 과거 A씨가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했을 때 별문제가 없었다는 관성적인 판단에 기대어 안일하게 퇴원 조치를 진행한 것으로 보았다. 의료 행위에 있어 과거의 경험칙보다 현재의 데이터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원칙을 강조한 대목이다.

다만 재판부는 병원의 책임을 무한정 인정하지 않고 배상 범위를 전체 손해액의 20% 수준으로 제한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1차 내원 당시의 퇴원 조치 과실 외에 이후 진행된 수술 절차나 검사 과정에서는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만한 추가 과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 행위가 가진 불가항력적 요소와 결과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하여 시장 질서 내에서 합리적인 배상 범위를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사법부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다.

이번 판결은 응급 의료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조기 퇴원 조치에 대해 강력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의료기관은 환자의 주관적 의사나 과거 기록보다 실시간 검사 수치와 활력 징후를 최우선하여 퇴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법적 책무를 재확인했다. 병원 경영의 효율성이나 병상 회전율보다 환자의 생명권을 담보하는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향후 유사한 의료 소송에서 환자의 활력 징후 데이터와 퇴원 절차의 적정성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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