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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끝에 마주한 생물학적 정체성, 42년 만에 모국 찾은 덴마크 입양인의 절박한 호소

이겨례 기자
암 투병 끝에 마주한 생물학적 정체성, 42년 만에 모국 찾은 덴마크 입양인의 절박한 호소
©연합뉴스

 

덴마크로 입양된 한인 송자영 씨가 암 투병 이후 자신의 생물학적 뿌리를 찾기 위해 4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며 친가족 상봉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요청하고 나섰다. 1981년 서울 용산구에서 태어나 3개월 만에 해외로 보내진 송 씨는 최근 유전적 연결 고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친부모의 행방을 쫓고 있다. 그는 자신의 투병 경험이 정체성 탐구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밝히며, 기록 속에 남겨진 단서들을 바탕으로 친가족과의 재회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송자영(덴마크명 크리스티나 송 레비센) 씨는 2011년 두 종류의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자신의 생물학적 근원을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기 시작했다. 암 투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그는 유전적 연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2023년부터 친가족을 찾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서적 그리움을 넘어 자신의 존재론적 근거를 확인하고 유전적 병력을 파악하려는 생존과 직결된 과정으로 풀이된다.

입양 기록에 따르면 송 씨는 1981년 7월 30일 오전 2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소재 동민의원에서 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신장 49㎝, 체중 3.1㎏의 건강한 상태였던 그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영아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상 그는 출생 직후부터 힘찬 몸짓을 보였던 건강한 아기였으며, 이는 그가 덴마크로 건너가기 전 한국에서 보낸 짧은 삶의 유일한 증거로 남아 있다.

송 씨의 친모는 출생 당시 19세의 미혼모였으며 여행 중 만난 20세의 친부 사이에서 그를 낳은 것으로 파악된다. 출산 이후 친모는 고향을 떠나 서울 은평구 일대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으나 홀로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현실적인 역부족을 느꼈다. 결국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시선을 극복하지 못한 친모는 병원에 아이를 맡겼고, 이는 곧 해외 입양이라는 경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송 씨는 출생 약 3개월 만인 1981년 11월 한국사회봉사회(KSS)를 통해 덴마크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양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으며, 한국에서 입양된 또 다른 여동생과 함께 자라며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했다. 서구권 문화에서 자라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문화적 교류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한국적 배경을 탐구해 왔다.

학문적 성취를 위해 매진한 송 씨는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과 호주 라트로브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며 전문 역량을 쌓았다. 그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며, 이는 입양인으로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학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30대에 직면한 갑작스러운 건강 위기는 그가 쌓아온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2011년 선고된 암 진단은 송 씨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뿌리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생존과 직결된 실체임을 각인시켰다. 그는 "친모를 찾는 과정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나와 이어져 있는 유전적 연결과 내 삶의 뿌리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고백하며 유전적 정보 확인의 절실함을 토로했다. 질병을 극복하는 사투 속에서 느낀 근원적인 고립감은 그를 더욱 강력하게 모국의 가족과 연결되게 만드는 동인이 되었다.

송 씨는 2023년 12월 재외동포청이 주최한 입양인 행사에 참석하며 42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는 감격을 누렸다. 첫 방문 이후 그는 매년 한국을 찾으며 자신의 뿌리가 닿아 있는 장소와 사람들을 직접 경험하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재정의하고 있다. 한국의 거리와 문화, 사람들과 접촉하며 그는 자신이 덴마크 시민이기 이전에 한국이라는 공동체와 혈연으로 묶인 존재임을 실감하고 있다.

비록 친모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전무하지만 송 씨는 그가 자신을 낳아준 용감한 여성이었음을 굳게 믿고 있다. 그는 국가아동권리보장원에 보낸 사연을 통해 어머니에게 자신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표명했다. 이러한 행보는 과거의 이별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단절되었던 생애의 전반부를 복원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실존적 화해의 과정이다.

일각에서는 수십 년 전의 부실한 입양 기록과 친부모의 거부 의사 가능성을 들어 상봉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입양인의 알 권리와 친부모의 사생활 보호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많은 입양인이 가족 찾기를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유전적 병력 확인과 정체성 확립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이라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향후 송 씨와 같은 해외 입양인들의 친가족 찾기를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과 사회적 연대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입양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민간 기관에 분산된 기록을 통합 관리하며,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고도화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송 씨의 사례는 한 개인의 사연을 넘어 우리 사회가 과거의 아픔을 어떻게 책임지고 치유할 것인가를 묻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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