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의 여파로 지난달 중동산 원유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37% 이상 급감하며 국내 에너지 공급 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한국의 최대 원유 공급처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2위 수입국인 미국 간의 물량 격차는 단 1천 톤 수준으로 좁혀지며 역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오는 7월까지 안정적인 수급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에너지 안보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면서 국내 원유 수입의 중동 의존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원유 수입량은 약 846만 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동산 수입량은 약 449만 톤에 그치며 전년 대비 37.3%라는 기록적인 감소 폭을 기록했다. 전체 원유 수입량에서 중동산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65.2%에서 53.1%로 12.1%포인트 급락하며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최대 수입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자리를 미국산 원유가 무서운 속도로 대체하며 시장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지난달 사우디로부터 들여온 원유는 214만 6천 톤으로 전년 대비 37.6% 줄어든 반면, 미국산은 13.4% 증가한 214만 5천 톤을 기록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3월까지만 해도 145만 톤에 달했던 양국 간 수입량 격차는 이제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인 1천 톤 내외로 좁혀졌다. 이는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한 미국의 영향력이 한국 에너지 시장의 핵심축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중동 내 주요 산유국들의 수입 실적은 전쟁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며 국가별로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이라크산 수입량은 42.4% 감소했으며 쿠웨이트산은 98.2% 폭락하며 사실상 수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분석된다. 카타르로부터의 원유 도입은 완전히 멈췄으나, 정부의 특사 파견 등 외교적 노력이 집중된 아랍에미리트(UAE)산 수입량은 81.6% 늘어난 140만 톤을 기록하며 완충 역할을 수행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협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특정 국가에 편중된 수급 구조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다.
북미와 대양주, 아프리카 등 비중동 지역으로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호주산 원유 도입량은 1년 전보다 89.0% 증가한 44만 톤을 기록했으며, 캐나다산은 205.5% 급증한 24만 톤이 국내로 들어왔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의 수입량은 572.5%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이며 에너지 안보의 새로운 전략적 거점으로 부상했다. 이는 중동발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한 민관 합동의 대체 수급선 확보 노력이 실질적인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대륙별 비중 변화를 살펴보면 북미 지역의 약진이 두드러지며 중동 의존 탈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산 원유의 수입 비중은 전체의 28.3%까지 치솟으며 1년 사이 10.3%포인트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양주와 아프리카의 비중도 각각 6.5%와 4.7%로 확대되며 과거 중동에만 매몰됐던 수급 구조에서 탈피해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이동과 한국 정유 업계의 유연한 대응 능력이 맞물린 결과로 평가된다.
정유 업계는 기술적 효율성과 경제적 실익을 고려해 미국산 원유 도입 확대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 정유사들이 중동산 중질유와 섞어 쓰기에 가장 편한 유종이 미국산 경질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미국 비중이 커지는 것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수급 조절을 넘어 국내 정제 설비의 운용 전략 자체가 미국산 원유에 최적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수입선 전환이 정제 시설의 공정 효율을 저하시키거나 도입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된 기존 설비를 미국산 경질유 위주로 가동할 경우 생산 수율 변화에 따른 추가 공정 비용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리카나 대양주 등 원거리 수입처 확대는 물류비 부담을 높여 국내 유가 안정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급격한 수급처 변동에 따른 비용 상승분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향후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현재의 공급망 다변화 기조를 유지하며 단기적 수급 불안을 차단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4개국에 이어 이달에는 19개국으로부터 약 7,85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하며 안정적인 수급 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오는 7월까지의 물량이 선제적으로 확보된 만큼 중동 분쟁의 장기화 시나리오에도 철저히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법치와 시장 질서에 기반한 에너지 수급 전략이 지정학적 파고를 넘는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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