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의 여파가 시차를 두고 국내 실물경제에 전이되면서 지난 4월 생산과 소비, 투자가 8개월 만에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석유정제 생산이 37년 11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급락하고 내수 소비마저 2년 2개월 만에 가장 크게 위축되는 등 경기 하방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국내 산업 활동을 지탱하는 세 가지 축인 생산과 소비, 투자가 지난달 동시에 꺾이며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全)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는 117.8로 전월 대비 0.6% 하락했다. 이는 지난 2월 2.1%, 3월 0.4% 등 두 달 연속 이어지던 증가세가 석 달 만에 마이너스로 반전된 결과다.
지난 2월 말 발발한 중동 전쟁의 충격이 공급망과 에너지 수급 체계를 흔들며 시차를 두고 국내 실물지표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원유 수급 여건이 극도로 악화하면서 석유정제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외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 심리와 가계의 소비 여력도 동시에 얼어붙으며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됐다.
광공업 생산은 주력 산업의 부진 속에 전월보다 0.7% 감소하며 전체 생산지수를 끌어내렸다. 특히 석유정제 생산은 전월 대비 19.4% 급락하며 1988년 5월 기록한 22.1% 감소 이후 37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원유 도입 비용 상승과 공급 불안정을 초래하며 정유 업계의 가동률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결과로 분석된다.
자동차 산업 역시 내수 부진과 부품 수급 차질이 겹치며 생산량이 10.0% 줄어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는 지난해 9월 기록한 15.3% 감소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으로, 완성차 업계의 실적 악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면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슈퍼 사이클을 맞은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 3.1% 증가하며 광공업 부문의 추가 폭락을 방어하는 버팀목 역할을 수행했다.
내수 경기를 보여주는 소비 지표는 생산보다 더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상품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보다 3.6% 감소하며 2024년 2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외 전쟁 리스크까지 더해지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며 유통업계 전반의 매출이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업 생산 또한 전월 대비 1.0% 감소하며 내수 위축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숙박·음식업과 도소매업 등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소비 심리 악화의 영향이 확산되면서 서비스 경제의 활력이 눈에 띄게 둔화됐다. 제조 업황의 부진이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으로 이어져 다시 소비를 제약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미래 경기 대응 능력을 가늠하는 투자 지표 역시 일제히 마이너스 늪에 빠지며 기업들의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드러냈다.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3.6% 줄어들며 기계류와 운송장비 투자가 모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건설업체의 실제 시공 실적을 나타내는 건설기성(불변) 역시 1.4% 감소하며 부동산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 지연의 여파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다만 현재와 미래의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종합지수 형행치는 미세하게 상승하며 지표 간 괴리 현상을 보였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달보다 0.2포인트 상승했으며,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0.6포인트 올랐다. 이는 반도체 업황의 견조한 회복세와 수출 호조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실물 지표의 부진과는 다소 온도 차가 존재한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국내 석유정제와 자동차 산업의 생산 차질로 직결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고물가 기조 속에서 대외 리스크가 가중됨에 따라 내수 소비와 투자 심리가 한꺼번에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 전반에 하방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번 트리플 감소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 침체의 전조인지 예의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공급망 다변화와 더불어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 사태의 장기화 여부가 향후 한국 경제의 회복 경로를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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