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중동 지정학적 위기에 위안화 가치 4년 만에 최고치, 인민은행 자본유출 방어 위해 강세 용인

윤근일 기자
중동 지정학적 위기에 위안화 가치 4년 만에 최고치, 인민은행 자본유출 방어 위해 강세 용인
©연합뉴스

 

중국 위안화의 실질적 가치를 나타내는 CFETS 바스켓 지수가 101.41을 기록하며 2022년 9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중동 전쟁의 확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중국 자산이 역내 안전처로 급부상하며 통화 가치를 끌어올린 결과다. 중국 인민은행은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입물가 안정과 자본유출 방지를 위해 위안화 강세를 묵인하는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외환교역센터가 산출하는 위안화 바스켓 지수인 CFETS 지수가 최근 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번 지수 상승은 위안화가 교역 상대국의 주요 통화들과 비교해 실질적인 구매력을 회복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2022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자유로운 중국 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린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CFETS 지수는 달러화와 엔화, 원화, 호주달러화 등 세계 주요 24개 통화와 위안화의 가치를 비교하여 산출하는 종합적인 환율 지표다. 2014년 12월 31일의 환율 수준을 기준점인 100으로 설정하여 위안화의 상대적 강세를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지난달 초 일시적인 약세 흐름을 보이기도 했던 이 지수는 곧바로 회복세로 전환하며 현재 100선을 상회하는 강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5월 한 달 동안 역외 시장에서 위안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약 1퍼센트 가량 절상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같은 기간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통화가 달러 강세에 밀려 약세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고 독보적인 강세 현상이다. 중국 경제가 중동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피난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중동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적 노출도를 제한적으로 유지해 온 점이 이번 위기 국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중동 리스크가 심화될수록 투자자들은 중국을 상대적 안전지대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 자산에 대한 매수세로 이어졌다. 이러한 대외 환경의 변화는 위안화 가치를 지지하는 강력한 펀더멘털로 작용하며 환율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시장 내부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실질적인 외화 운용 방식 변화가 위안화 강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과거 달러 자산을 선호하던 중국 내 주요 기업들이 최근 중동발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보유 중인 달러화를 대거 매도하고 위안화를 사들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부터 역내 고객들의 위안화 순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위안화 절상 압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외환 딜러들은 이러한 기업들의 위안화 수요가 달러화 반등 시기마다 완충 작용을 하며 위안화 가치의 하방 경직성을 확보해주고 있다고 전한다.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위안화 강세 쪽으로 기울면서 인민은행의 개입 없이도 통화 가치가 스스로 상승하는 국면이 조성되었다. 이는 중국 자본시장의 성숙도와 대외 리스크 대응 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 통화 당국인 인민은행의 태도 변화 역시 위안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메이뱅크의 피오나 림 외환 전략가는 "최근 위안화 고시환율 성향을 보면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용인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수입물가 상승에 대한 당국의 우려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진단했다.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내수 물가 안정과 자본 유출 방어를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당국의 기조는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단순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서 벗어나 통화 가치 안정을 통한 금융 시스템의 신뢰 확보를 꾀하고 있다. 위안화가 강세를 유지할 경우 에너지 등 원자재 수입 비용이 절감되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위안화 자산의 가치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막는 강력한 방어막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다만 위안화의 일방적인 강세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급격한 환율 변동을 경계하는 환율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국유은행을 동원한 달러 매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친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제조업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당국이 적정 수준에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스티븐 치우 수석 이머징마켓 외환 전략가는 인민은행의 구두개입 증가와 외화예금 지급준비율 인상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위안화 강세가 시장의 예측 범위를 벗어날 경우 인민은행은 유동성 조절을 통해 환율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향후 중동 사태의 전개 양상과 인민은행의 정책적 대응이 위안화 환율의 추가 상승 여부를 결정짓는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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