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아리랑' 선율 실종?…벽 무너뜨린 '발레 아리랑', 그 깊은 한과 치유

고진아 기자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은 관객들은 익숙한 '아리랑' 선율 없이도 한국인의 깊은 '한'과 연대의 힘을 표현한 '발레 아리랑'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공동 안무가 이루다는 「아리랑 선율 대신 정서만 가져왔다」며 제목과의 역설적 관계를 강조했다.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발레 아리랑'은 안무가 최수진과 이루다가 공동 창작하고 음악·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무토(MUTO)가 협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익숙한 아리랑 선율 대신 '아리랑에 담긴 민족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며, 절망의 벽 앞에 선 인간의 좌절과 연대를 통한 저항,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무대 위 거대한 벽은 압도적인 절망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1부 최수진 안무는 이 벽 앞에 선 무용수들의 좌절감을 처절하게 표현했다. 쓰러지고 주저앉는 위태로운 몸짓은 고통과 상실감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나약한 단면을 보여줬다. 삼베옷을 연상시키는 의상은 그 아픔의 깊이를 더했다.

그러나 작품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았다. 2부 이루다 안무는 개인의 좌절을 넘어선 연대의 힘에 주목했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하며 절망에 맞서는 의지를 표현하는 2인무를 선보였다. 이윽고 무대 안쪽 스크린의 거대한 벽은 서서히 균열 가기 시작했고, 무용수들은 힘을 모아 저항하며 마침내 벽을 무너뜨렸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신명 나는 군무로 '한풀이'를 하는 장면은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아리랑' 선율 실종?…벽 무너뜨린 '발레 아리랑', 그 깊은 한과 치유
[사진=연합뉴스]

벽을 깨부수고 환희하는 순간도 잠시, 작품은 고요히 엎드린 무용수들과 붉은 옷을 입은 한 무용수의 손짓으로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루다 안무가는 「절망은 순환되지만 다시 일어설 힘을 잃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벽을 깨부순 이후에도 인간은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라고 작품의 순환적 메시지를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닌, 절망을 재해석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무토(MUTO)가 구현한 음악과 미디어아트 또한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거문고와 태평소의 한국적 선율에 전자음악을 섞어낸 사운드는 익숙한 아리랑 선율 없이도 한국적인 정서와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선사했다. 특히 휘모리장단이 가미된 리듬은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힘을 더하며 작품의 서사를 강화했다.

'발레 아리랑'은 전통적인 아리랑을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며 창작 발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절망 속에서도 연대를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2026년 현재, 우리 사회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며 오랜 여운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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