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주택을 새롭게 단장하는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은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후 주택 정비 사업이 곳곳에서 난항을 겪으며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단순히 공사비 상승을 넘어, 가계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임금 슬림화'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임금 슬림화'의 그림자, 가계 재정 압박 심화
'임금 슬림화'는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 인상률을 낮추거나, 성과급 비중을 늘리는 등 임금 체계를 효율화하는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2025년 우리나라 상용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처음으로 5천만 원을 넘어섰지만, 이는 대기업의 성과급 증가가 견인한 측면이 큽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 속도는 둔화되어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임금 격차와 전반적인 임금 상승률 둔화는 가계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주택 가격은 결국 소득의 함수이며, 소득 증가 속도가 집값 상승을 크게 밑돌면 추가 주택 구매 여력이 고갈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24.1배로, 중위소득 가구가 소득 전액을 저축해도 내 집 마련까지 24년 이상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주택 가격 부담이 높을수록 소비 성향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며,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젊은 층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이 크게 확대되어 소비 여력을 직접적으로 제약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26년 3월 27일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연 4.41~7.01%를 기록하며, 상단이 7%를 돌파한 것은 2022년 10월 이후 41개월 만입니다. 이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재정 압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 노후 주택 정비, 높아지는 문턱과 분담금의 덫
노후 주택 정비는 크게 재건축과 재개발로 나뉩니다. 재건축은 주로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사업이며, 재개발은 오래되고 낡은 주택이나 상가가 밀집한 지역 전체를 정비하여 새로운 동네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정비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즉 '분담금'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분담금은 아파트 분양 수익으로 공사비를 충당하지 못할 때 조합원들이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을 말합니다.
최근 건축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재건축 분담금은 크게 뛰어올랐고, 이는 정비 사업이 삐걱거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분담금은 '조합원 분양가액 - 조합원 권리가액'으로 계산되는데, 공사비, 사업 운영비, 기반 시설 설치비, 이주비, 세금 등 다양한 비용이 총사업비에 포함됩니다. 여기에 재건축을 통해 얻는 초과 이익이 8천만 원을 넘을 경우 최대 50%까지 환수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 또한 조합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더 큰 문제는 노후 주택 소유자들의 경제적 여건입니다. 주택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준공 20년 이상 노후 주택 집주인의 평균 연령은 65.8세이며, 월평균 소득은 311만 3천 원으로 노후 주택 외 주택 집주인(평균 57.9세, 월평균 소득 423만 4천 원)보다 100만 원 이상 낮습니다. 이러한 고령 및 저소득층 소유주가 많은 노후 주택 지역에서는 낮은 사업성 때문에 소규모 정비 사업조차 진행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 임금 슬림화가 재건축·재개발을 막는 메커니즘
결론적으로 '임금 슬림화'는 노후 주택 정비 사업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임금 상승률 둔화와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확대는 가계의 전반적인 소득 증가를 제한합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과 맞물려 가계의 재정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재건축·재개발 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노후 주택 소유주 중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임금 슬림화로 인한 소득 감소는 이들의 분담금 납부 능력을 직접적으로 저해합니다. 분담금 마련을 위한 대출 역시 높은 금리로 인해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 추진 동력을 상실하거나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가로주택정비사업 661개소 중 준공된 곳은 7.1%인 47곳에 불과하며, 이는 낮은 사업성과 복잡한 절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개별 가구의 문제를 넘어 도시 전체의 주거 환경 개선을 지연시키고, 노후화된 주택의 안전 문제와 생활 불편을 장기화시키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25년에는 30년 이상 된 주택이 70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주택 노후화와 기반 시설 부족, 빈집 증가와 같은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결론: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책적 제언
'임금 슬림화'가 노후 주택 정비 사업의 숨겨진 걸림돌로 작용하는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가계의 실질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중요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전반적인 임금 상승률을 높여 가계의 주거비 부담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노후 주택 정비 사업의 문턱을 낮추고 사업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과도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공사비 상승에 따른 조합원 분담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금융 지원책을 확대해야 합니다.
셋째, 고령 및 저소득층 노후 주택 소유주를 위한 맞춤형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한 분담금 납부 유예, 저금리 대출 지원, 공공의 사업 참여 확대 등을 통해 자력으로는 정비 사업 추진이 어려운 가구들이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같이 도시 기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이 주택 단지 정비에만 치우치지 않고, 상업·산업·기반 시설 등 비주거 시설을 포함한 통합적인 도시 재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특례를 마련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금 구조의 변화가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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