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겪은 간첩 누명이 4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부산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고인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손녀의 재심 청구와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권고가 이번 판결을 이끌었다.
고 박기홍 씨는 1980년대 간첩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로, 8일 부산지방법원 형사4-1부(정성호 부장판사)에서 열린 재심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로써 고인이 겪었던 45년간의 억울함이 사법적으로 해소되었다. 재판부는 기존 증거 중 일부는 증거 능력이 없으며, 나머지 증거들로도 고인의 행위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억울한 혐의의 시작과 진행
박기홍 씨는 1978년 6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지인들에게 북한 관련 발언을 총 10차례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시 그는 "38선을 없애고 통일이 되려면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 남한은 사회제도 모순 때문에 없는 사람은 학교를 계속 다니기 어렵지만 북한은 실력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다. 북한에 가면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족에 따르면 일본 유학 경험이 있던 고인은 일본 방송을 자주 시청했으며, 방송에서 접한 내용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신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강압 수사와 45년 옥살이
박 씨는 1981년 1월 경찰에 체포된 직후 당시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로 넘겨졌다. 그는 연행 초기 한 달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 등 가혹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 결국 같은 해 6월, 박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씨는 1983년 출소 후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사실상 끊고 혼자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외롭게 지내다 1992년 1월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암울했던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되었다. 당시 수사 기관의 강압적인 태도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조사는 오랜 기간 박 씨와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 손녀의 진실 규명 노력과 과거사위의 역할
고인의 억울한 죽음 뒤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 손녀의 끈질긴 노력이 사법 정의 회복의 불씨를 지폈다. 손녀는 제주 지역에서 간첩 누명을 쓴 이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사례들을 접한 뒤, 2023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신청 접수 이듬해인 2024년 6월, 박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강압적인 조사와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재심을 권고했다. 이러한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박 씨의 재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위원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무리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1961년부터 1987년까지 발생한 간첩 조작 사건 38건, 90명의 피해자가 공식 확인되는 등 과거사 정리 노력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 사법 정의 회복과 남은 과제
이번 무죄 판결은 개인의 억울한 희생을 늦게나마 국가가 인정하고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과거 국가보안법이 무고한 시민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역사적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번 판결이 비슷한 과거사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8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는 납북어부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70대가 반세기 만에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된 판단을 스스로 교정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과거사 사건들이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의 길을 기다리고 있어,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요구된다. 문화일보는 고령이거나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을 고려할 때 검찰의 직권 재심 등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진실화해위와 사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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