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 확대로 전동식 도어 핸들의 안전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비상 상황에서 차량 탈출 및 구출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 안전 기준 제정이 본격화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전 세계 전문가들과 함께 사고 발생 시 전원 차단 상황에서도 문을 열 수 있는 세부 시험 방법과 기술 규격 마련에 착수했다. 이번 논의는 향후 글로벌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차량의 설계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자동차 외관 설계의 혁신을 불러왔다. 특히 공기 저항을 줄이고 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차 문 손잡이가 차체 안으로 매립되는 플러시 핸들(Flush Handle)과 전자식 제어로 문을 여는 전동식 도어 장치가 보편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예기치 못한 사고 상황에서 치명적인 안전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 전동식 도어 핸들의 안전 사각지대 해소 방안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사고 시 발생하는 전원 차단 문제는 탑승객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했다. 차량 충돌이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 고전압 배터리 보호를 위해 전력이 차단되거나, 저전압 배터리가 손상되면서 전동식 문 열림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행 중에는 매립되어 있는 손잡이가 외부에서 돌출되지 않아 구조대원이 사고 차량 내부의 탑승자를 구출하는 데 심각한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2026년 4월 21일부터 사흘간 서울 서초구 호텔 페이토 강남에서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산하 차량 국제기준 조화포럼(WP.29) 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회의의 핵심 명칭은 'TF EDO'(Task Force on Emergency Door Opening)로, 비상시 자동차 문 열림과 관련된 국제 기준을 논의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글로벌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문가들은 전원 공급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도 내외부에서 문을 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요건을 정의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험 방법을 도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글로벌 기술 규제 조화 및 한국의 전략적 역할
이번 서울 회의는 한국이 미래 모빌리티 안전 분야에서 국제적인 주도권을 확보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TF EDO는 오는 2026년 6월 UNECE/WP.29 총회의 공식 승인을 거쳐 국제 기준 개정 실무 논의를 위한 전문가기술그룹(IWG)으로 격상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는 국토교통부와 자동차안전연구원이 부의장직을 맡기로 확정되면서, 한국의 기술적 의견이 국제 표준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WP.29에서 결정되는 국제 기준에 맞추어 차량을 설계해야 하므로, 이번 논의 결과는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설계 표준을 재편하는 파급력을 가진다. 한국이 부의장국으로서 논의를 주도하게 되면 국내 자동차 산업계가 국제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앞선 안전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제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 안전한 미래 모빌리티 환경을 제공하는 토대가 된다.
▲ 수중 탈출 및 직관적 조작 체계의 국제 표준화
회의에서는 단순히 충돌 시의 문 열림뿐만 아니라 차량 침수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의 탈출 안전성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국지성 호우로 차량 침수 사고가 빈번해짐에 따라, 수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도 전동식 창유리 장치가 일정 시간 작동하거나 비상 탈출을 돕는 세부 기준이 마련될 예정이다. 특히 전자 장비에 익숙하지 않은 노약자나 어린이를 포함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물리적 비상 개방 방식'에 대한 표준화 논의도 추진된다.
정용식 공단 이사장은 세계적인 수준의 비상시 자동차 탈출 및 구출 안전성 분야 국제 기준을 정립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정립될 국제 안전 기준은 전기차 화재나 침수 사고 발생 시 소중한 인명을 구조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이번 서울 회의를 기점으로 글로벌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도출된 기준이 실제 차량 제작 공정에 실효성 있게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적 검증을 지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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