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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우리은행, 1조원대 환치기 이익 주체 아냐"...법인 책임론에 무죄 판결

정휘 기자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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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환치기 일당의 불법 외환 송금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우리은행 법인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은행이 위법 행위로 인한 이익의 귀속 주체가 아니며, 직원의 확인 의무 미이행을 법인의 책임으로 확장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1조 원대 규모의 금융 범죄에서 금융기관 법인의 형사적 책임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사례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임혜원 부장판사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식회사 우리은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은행 직원의 위법 행위가 존재하더라도 법인 자체가 해당 행위로 인한 이익을 얻는 주체가 아니라면 양벌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금융기관 내부에서 발생한 개인의 일탈 행위에 대해 법인의 관리 책임을 묻는 검찰의 기소 방침에 제동을 건 결과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우리은행 전 지점장 A씨는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가상자산 환치기 세력과 결탁해 거액의 외환을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일당이 제출한 허위 인보이스가 정상적인 수입 대금 결제인 것처럼 가장해 부하 직원들에게 송금 처리를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상자산 환치기는 해외에서 이전받은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서 매도한 뒤 그 대금을 외화로 바꿔 다시 해외로 송금하여 차익을 거두는 수법을 의미한다.

국내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은 이러한 범죄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A씨가 실행한 불법 송금 규모는 약 1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그는 이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챙기는 등 범행에 깊숙이 가담했다. 사법부는 이미 2023년 6월 A씨에 대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판결한 바 있다.

검찰은 A씨의 범행 과정에서 우리은행 법인 역시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하여 외국환거래법 제31조의 양벌규정을 근거로 기소했다.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이 업무와 관련해 위반 행위를 했을 때 법인에게도 벌금형을 과하는 조항이다. 검찰은 우리은행이 A씨의 불법 행위를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10억 원 이상의 자본거래 시 한국은행 신고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하며 벌금 1억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이러한 법리 적용이 형벌 법규의 지나친 확대해석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임혜원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은행은 양벌규정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양벌규정의 본질적 취지가 실제 위반 행위자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는 주체에게 책임을 묻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이번 사건에서 위법 행위로 인한 이익의 귀속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무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로 삼았다. 직원이 개인적인 범죄 공모를 통해 수익을 챙긴 행위가 법인의 영업 이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면 법인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취지다. 또한 담당 직원들이 제출된 서류를 믿고 정상적인 물품 대금 송금으로 인식했다면, 법인 차원에서 추가적인 확인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금융기관 종업원이 증빙서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법인이 신고 의무 확인 과정을 생략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시각이다. 재판부는 "사용인이 증빙서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신고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는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의무를 해석을 통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법조계와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향후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시스템과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직원의 일탈에 대해 법인이 지는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라며 "단순히 관리 소홀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만으로는 법인을 형사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금융 당국의 감독 규정과 형사법적 처벌 기준 사이의 간극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시중은행의 망을 통해 불법적으로 유출되었음에도 법인이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금세탁 방지 및 외환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은행의 공적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법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자칫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금융 사고 발생 시 법인의 배상 책임과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검찰의 항소 여부에 따라 이번 사건은 상급심에서 다시 한번 법리적 다툼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우리은행이 거액의 송금 과정에서 필수적인 내부 필터링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보강하여 입증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유사한 외환 송금 사건 조사 및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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