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연해주의 페치카' 최재형, 5월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 32개 학교 설립과 안중근 의거 지원 조명

이겨례 기자
'연해주의 페치카' 최재형, 5월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 32개 학교 설립과 안중근 의거 지원 조명
©연합뉴스

 

재외동포청은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독립운동의 핵심 후원자였던 고(故) 최재형 선생을 5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했다. 선생은 사업가로서 일군 막대한 자산을 32개의 소학교 설립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지원에 쏟아부으며 조국 독립과 동포 권익 보호에 헌신했다. 이번 선정은 가계의 달을 맞아 희생과 나눔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천한 선생의 생애를 기리기 위한 결정이다.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 사이에서 따뜻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로 불리며 절대적인 존경과 신망을 얻은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업가였으나, 개인의 영달을 뒤로하고 전 재산을 조국 독립과 한인 교육에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재외동포청은 선생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현대 재외동포 사회의 사표가 된다고 판단하여 이번 선정의 배경을 밝혔다.

함경북도 경원의 빈농 가문에서 태어난 선생은 9세가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로 이주하며 고난의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 가출하여 러시아 상선에서 일하며 습득한 국제적 감각과 언어 능력은 훗날 그가 연해주에서 사업가로 대성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연해주 지역에서 군수물자 보급과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이를 오로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사용했다.

선생은 교육이 민족의 자강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연해주 일대에 니콜라옙스크 소학교를 포함한 32개의 교육 기관을 세웠다. 학교 설립뿐만 아니라 철도 공사 현장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강제 동원된 한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들의 법적·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헌신적 행보는 연해주 한인사회가 결속하고 항일 운동의 전초기지로 성장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역시 최재형 선생의 전폭적인 물적·심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의거에 필요한 자금과 총기를 직접 마련해 주었으며, 안 의사가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등 거사의 실질적인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단순한 자선가로서의 면모를 넘어 선생이 독립운동의 전략적 배후이자 핵심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선생의 항일 투쟁은 무장 투쟁과 언론 활동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민족의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08년 안중근, 이위종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직접적인 격전을 벌였으며, 항일 신문인 대동공보의 사장을 맡아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후 1919년에는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조직적 항일 운동에 투신했다.

1920년 4월 일본군이 연해주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4월 참변' 당시 선생은 피신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동포들을 지키기 위해 자택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일본군에 체포된 선생은 우수리스크 언덕에서 순국했으며, 일제는 선생의 시신을 암매장하여 현재까지도 그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장렬한 희생은 연해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며 국가적 예우를 다하였으나 유해 미발견으로 인해 묘역 조성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순국 103년 만인 2023년, 우수리스크 최재형 기념관 뒤편의 흙을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아내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합장 안장했다. 이는 국가가 끝까지 독립운동가의 넋을 기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조치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선생의 유해가 여전히 이국땅에 묻혀 있다는 점을 들어 발굴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신중한 목소리도 나온다. 기록의 부재와 지형의 변화로 인해 발굴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으나, 선생이 남긴 유산이 현재의 한·러 관계와 재외동포 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역사학계는 선생의 행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교육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최재형 선생은 자신의 성공과 재산을 동포사회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나눈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이번 선정의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연해주 한인들의 따뜻한 난로였던 선생의 삶을 통해 희생과 나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외동포청은 향후에도 세계 각지에서 헌신한 동포들의 발자취를 발굴하여 알리는 사업을 지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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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의 페치카' 최재형, 5월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 32개 학교 설립과 안중근 의거 지원 조명 : 정치/사회 : 재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