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일본으로 향하는 중동산 원유의 약 45%가 제3국 선박을 통한 중간 해역 환적 방식으로 조달되고 있다. 이는 일본 선적 유조선의 위험 지역 진입을 피하면서도 미국산 원유 대비 수송 효율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함에 따라 일본의 원유 조달 체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유럽 해운 데이터 업체 케플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일본으로 향한 중동산 원유 수송선 33척 중 15척이 말레이시아나 인도 인근 해역에서 원유를 옮겨 실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중동산 원유 조달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치로, 일본 정유업계가 직접적인 위험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이례적인 운송 경로를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선박들은 중동의 위험 해역 항해를 전면 회피하는 대신 아시아 중간 지점에서 외국 선박으로부터 물량을 넘겨받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본이 에너지 안보 확보와 선박 안전 사이에서 실용적인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 정유사들은 중동에서 아시아 중간 지점까지의 수송을 제3국 선박에 맡기고, 자국 선박은 비교적 안전한 나머지 구간만을 운항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일본 최대 정유사인 에네오스 홀딩스 산하의 '에네오스 드림'호가 지난달 말라카 해협에서 한국 유조선과 조우하여 원유를 환적했다. 이 한국 유조선은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항구에서 출발하여 약 18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왔으며, 해상에서 호스를 연결해 일본 측에 물량을 인계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러한 한일 간 해상 물류 협력이 중동 리스크 대응을 위한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공조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상 환적 방식은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원유 수입보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산 원유를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여 일본까지 수송할 경우 50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지만, 중동산 원유의 환적 수송은 그 절반 수준인 25일 내외면 충분하다. 환적 작업 자체에 2~3일이 소요되고 추가 운영비가 발생하지만, 전체적인 물류비용 측면에서는 여전히 중동산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유업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변칙적 조달 방식이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다이요석유의 한 간부는 운송 기간이 지나치게 긴 미국산 원유를 전적으로 의존하기에는 수송비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현재의 환적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이러한 행보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발 공급망 불안이 지속될수록 주요 소비국들은 수송 경로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새로운 물류 거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처럼 중간 해역에서의 환적 활성화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 해상 요충지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다만 해상 환적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우려도 존재한다. 환경 전문가들은 공해상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원유 환적 작업이 기름 유출 사고의 위험을 높이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2~3일에 달하는 환적 기간 동안 기상 악화나 기술적 결함이 발생할 경우 전체 공급망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리스크로 꼽힌다.
결국 일본의 원유 조달 전략은 철저한 실리주의와 국익 우선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에너지 자급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은 막대한 추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향후 중동 정세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중간 해역 환적 방식이 정례화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고육책에 그칠지는 시장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은 일본의 이러한 대응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역시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의 환적 모델은 유사시 공급망 안정을 위한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존립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 시대에 일본의 유연한 물류 전략은 국제 원유 시장의 새로운 대응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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