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서 전 세계 57개국이 석유 가격 상한제와 유류세 인하 등 강력한 시장 개입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 중이다. 글로벌 해상 석유 교역량의 25%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과 태국 등 16개국은 소매 가격 상한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한 40개국은 대규모 유류세 감면을 통해 가격 방어에 나섰다. 각국 정부는 시장 자율 기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 아래 국가 주도의 에너지 통제 체제로 전환하며 소비자 보호와 수급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동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주요국 정부가 에너지 시장의 자율성을 배제하고 직접적인 가격 통제와 시장 개입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이 발표한 '중동 분쟁의 영향 및 해외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우리나라를 포함한 총 57개국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매가격 상한제, 연료 보조금 지급, 세제 혜택 등의 비상 대책을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정밀 분석을 바탕으로 집계된 수치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 일일 해상 석유 교역량의 4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는 각국 정부가 시장 원리를 포기하고 개입을 택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원유 수송의 핵심 동맥이 봉쇄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면서 주요국들은 유가 상승의 충격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과거 에너지 위기 당시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존중했던 서구권 국가들조차 이번에는 선제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책을 내놓으며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켰다.
우리나라의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사한 형태의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여 운영 중인 국가는 일본, 헝가리, 체코, 태국, 폴란드 등 총 16개국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휘발유 소매가격을 리터당 170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며 가격 상승폭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태국 역시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해 석유 가격이 리터당 30바트를 초과하지 않도록 보조금 체계를 가동하며 시장 가격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과거에 폐지했던 규제를 재도입하거나 국영 기업을 활용해 가격 동결을 단행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헝가리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과거의 가격 상한제를 다시 불러들였으며, 체코는 일일 단위의 가격 상한제와 함께 주유소의 최대 마진율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대만은 국영 석유회사인 CPC를 통해 유가 상승 폭을 엄격히 제한하고 4월 첫째 주부터 소매가격을 전격 동결하며 공공 주도의 가격 방어선을 구축했다.
유류세 비중이 높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는 총 40개국이 대대적인 세제 혜택을 통해 시장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스페인은 유류세를 유럽연합(EU)이 허용하는 최저 수준인 경유 리터당 0.33유로까지 낮췄으며, 부가가치세 또한 기존 21%에서 10%로 절반 가까이 인하하는 결단을 내렸다.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도 일제히 유류세를 인하하며 국가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해 고유가 직격탄을 맞은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자유 시장 경제의 상징적인 국가들도 예외 없이 시장 감시와 재정 투입을 통한 가격 안정화 정책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당초 계획했던 유류세 인상을 무기한 연기하는 한편, 주유소의 폭리 등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시장 점검 강도를 예년보다 대폭 강화했다. 미국은 연방 유류세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유가 급등이 초래할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통제와 더불어 전 세계 40개국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기 위한 수요 관리 정책을 병행하며 국가 비상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가장 널리 도입된 정책은 대국민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수송 부문의 운행 제한으로, 각각 30건과 25건의 시행 사례가 보고되었다. 공무 출장 제한, 재택근무 장려, 냉방 온도 제한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에너지 다이어트가 정부 주도로 강제되거나 권고되는 상황이다.
특히 연료 부족으로 인한 전력난이 심각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에너지 소비 억제에 나서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등은 재택근무와 냉방 제한은 물론, 학교와 대학의 운영시간까지 조정하며 에너지 절감을 위한 극한의 대책을 실행 중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에너지 정책 동향이 시장 중심에서 정부 중심으로의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백민호 한전 경영연구원 선임은 "중동 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혼란이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고 소비자 지원과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국가 주도로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대대적인 시장 개입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인위적인 가격 억제는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에너지 과소비를 유도하여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향후 중동 정세의 전개 양상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강도는 더욱 세분화되고 강화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각국 정부의 시장 개입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제 유가 결정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부상함에 따라, 시장 원칙과 공공 복리 사이의 최적점을 찾기 위한 각국의 정책 실험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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