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이 과거의 기억과 최신 정보 중 현재 상황에 필요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불러오는 '신경 스위치'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내측중격과 내측내후각피질을 잇는 특정 신경 회로가 기억 인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경로임이 밝혀졌으며, 이는 향후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 질환 환자의 인지 기능 회복을 위한 획기적인 치료 기틀이 될 전망이다.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은 내측중격(MS)에서 시작해 내측내후각피질(MEC)로 이어지는 특정 신경 회로가 최신 기억을 선택적으로 인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뇌가 수많은 과거의 기억 데이터 속에서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최신 정보를 선별해내는 메커니즘을 정밀 분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특정 회로가 일종의 제어 장치로 작동함을 확인했다. 이번 성과는 뇌의 기억 저장 방식뿐만 아니라 저장된 정보를 다시 꺼내 쓰는 '인출' 과정의 복잡한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측중격은 뇌의 기억과 학습을 조절하는 핵심 영역으로서 해마의 활동 리듬을 진두지휘하는 '조율자' 역할을 담당하는 부위다. 이 영역의 특정 신경세포가 기억 정보를 처리하여 해마로 전달하는 관문인 내측내후각피질로 신호를 보낼 때, 뇌는 과거의 낡은 정보보다 최신 기억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측내후각피질은 해마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기억 정보의 입출력을 총괄하는 만큼, 두 영역 사이의 신호 전달 강도가 기억의 시점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빛을 통해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법을 도입하여 해당 신경 회로의 기능을 실험동물을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했다. 실험 결과, 인위적으로 이 신경 회로를 차단했을 때 실험동물은 현재 상황에 맞는 최신 정보를 활용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오류를 범했다. 특히 기억 저장의 중추인 해마의 신경 활동 역시 최신 상태가 아닌 과거의 패턴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관찰되어, 해당 회로가 기억의 시점을 전환하는 물리적 스위치임을 뒷받침했다.
뇌의 활성 상태를 나타내는 특정 뇌파 리듬 역시 기억 인출의 효율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신경학적 지표임이 이번 연구에서 함께 드러났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학습과 집중에 관여하는 세타파가 지배적인 '온라인 상태'가 길게 유지될수록 최신 기억을 인출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반면 휴식이나 수면 시 나타나는 델타파와 온라인 상태 사이의 전환이 빈번하게 발생할 경우, 뇌의 정보 처리 일관성이 깨지며 기억 인출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다만 이번 연구 결과가 실험동물 모델을 기반으로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복잡한 인지 체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뇌 신경망은 개별 개체의 환경과 유전적 요인에 따라 고도의 가변성을 지니고 있으며, 기억의 선택 과정에는 감정적 상태나 외부의 복합적인 자극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신경 경로의 통제가 기억의 선별적 인출을 유도한다는 사실은 뇌 과학 분야의 명확한 실증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진희 교수는 "뇌가 과거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또한 "이번 발견이 향후 치매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 환자들이 겪는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기술 개발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규명된 신경 회로를 정밀하게 제어하여 저하된 인지 기능을 복원하는 후속 연구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현대 의학계는 이번 연구가 고령화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인지 장애 질환 치료에 있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뇌의 특정 리듬과 상태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기억 인출 효율을 높이는 기술은 향후 디지털 치료제나 정밀 뇌 자극 의료기기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법치와 시장 효율성을 중시하는 보건 의료 정책 기조 속에서 기술적 실효성이 입증된 이번 연구 성과는 관련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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