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이 재편한 한반도 질서... 중국 '북미 메신저' 입지 강화

김영 기자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이 재편한 한반도 질서... 중국 '북미 메신저' 입지 강화
©연합뉴스

 

베이징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이 대폭 확대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번 회담은 북미 대화의 즉각적인 재개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나,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는 실질적인 메신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를 통해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중국의 개입 여지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미중 정상 간의 만남이 한반도 지정학적 구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심층 분석했다. 최용환 연구위원 등 연구진은 '이슈브리프 제842호'에서 지난 1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 결과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연구진은 이번 회담이 북미 간 직접적인 대화 물꼬를 트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이 증대된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의 핵심 인사인 왕이 외교부장이 미중 정상회담 직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한 사실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연구진은 왕 부장이 평양에서 청취한 김 위원장의 입장이 베이징 회담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만약 이러한 정보 전달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중국은 단순한 인접국을 넘어 북미 사이의 전략적 메신저 역할을 수행한 셈이 된다. 이는 동북아시아 외교 무대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더욱 힘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는 전용기 내에서 취재진을 만나 시 주석과 북한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하며 사안의 엄중함을 시사했다. 비록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보안상의 이유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양국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유지에 관한 전략적 의견을 교환했음은 자명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외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북한 문제를 의제로 올린 점은 해당 사안이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여전히 우선순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회담의 성격은 단순히 한반도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패권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복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특징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대만 문제, 무역 갈등, 첨단기술 점유권 등 양국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이와 함께 중동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 지구적 안보 위기 속에서 북한 문제를 함께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작지 않은 외교적 중량감을 가진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지렛대 삼아 다른 협상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려 할 가능성도 내포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시진핑 주석의 9월 방미 일정을 앞두고 전개될 북중 간의 고위급 접촉 여부를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고 있다. 시 주석의 답방 성격인 이번 방미 이전에 중국 고위 인사가 다시 방북하거나, 반대로 북한 측 인사가 베이징을 방문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중 간의 전략적 소통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중국의 메신저 역할이 지속성을 확보할 경우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상당 부분 베이징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이 북미 간의 실질적인 적대 관계 해소나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중국의 역할 확대가 자칫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를 약화시키거나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회담 이후에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양국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용환 연구위원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북미 대화 재개의 직접적 계기는 되지 못했지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 증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가 전쟁 중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과 대만, 무역, 첨단기술 등 첨예한 사안들에 관해 협상하면서 북한 문제를 논의한 것은 그 자체로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중 관계의 긴장 속에서도 한반도 문제만큼은 양국이 관리해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향후 한반도 정세는 중국이 북미 사이에서 얼마나 공정하고 효과적인 중재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국의 역할 확대를 예의주시하며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한 대응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중국의 메신저 역할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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