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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정당해도 수단 위법"…대법, 지하철 스티커 시위 전장연 박경석 벌금형 확정

이겨례 기자
©연합뉴스

 

대법원이 서울 지하철역 승강장에 수백 장의 스티커를 부착하고 래커를 뿌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벌금 300만 원, 함께 기소된 활동가들은 각 100만 원의 벌금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권리 증진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더라도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방식의 시위는 법적 허용 범위를 벗어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그르친 잘못이 없다고 보아 피고인 측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권달주 상임공동대표와 문애린 활동가에게도 각각 벌금 100만 원이 확정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3년 2월 13일 서울 지하철 4호선과 6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발생한 기습 시위였다. 박 대표 등은 당시 장애인 예산 증액과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며 역사 내벽과 바닥에 스티커 수백 장을 붙이고 래커 스프레이를 살포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의 행위가 공공 재물을 훼손했다며 고소했고 검찰은 이듬해인 2024년 1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사법부의 판단은 1심과 2심에서 극명하게 갈리며 법적 쟁점이 부각됐다. 2024년 5월 열린 1심 재판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스티커 부착이 건물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저해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당시 재판부는 스티커의 접착력이 강하더라도 제거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며 역사 이용에 중대한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으며 법질서 유지와 시민의 이용권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렸다. 2심은 스티커가 안내 문구를 직접 가리지 않았더라도 지하철 이용객들이 행선지나 안전 표지를 찾는 데 상당한 불편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승강장 미관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일반 시민들이 불쾌감이나 저항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유죄의 근거로 채택됐다.

특히 원상회복을 위해 투입된 사회적 비용과 행정적 손실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훼손된 승강장을 복구하기 위해 직원 30여 명을 동원하여 이틀 동안 제거 작업을 벌여야 했다. 재판부는 대규모 인력이 장시간 투입되어야 했던 상황 자체가 재물손괴의 결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알리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합법적 수단을 강구하지 않고 수백 장의 스티커를 부착했어야 할 만한 긴급성이나 불가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형법상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 즉 정당행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선언이다.

피고인 측은 재판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장애인 인권 보호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들은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장애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표현의 방식이 타인의 권리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향후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한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위법성까지 덮어줄 수 없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대법원이 재확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라 할지라도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표출되어야 한다는 사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전장연의 향후 시위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교통공사 등 유관 기관들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역사 내 시설물 훼손 행위에 대해 더욱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시민들의 이동권을 침해하거나 공공 기물을 파손하는 형태의 집회는 향후 형사 처벌과 더불어 막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뒤따를 수 있다.

법치 국가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은 반드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갈등을 표출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향후 장애인 단체와 정부 간의 대화가 물리적 충돌이 아닌 합리적인 정책 토론의 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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