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 억류됐던 한국 선박 26척 중 유조선 한 척이 이란과의 외교적 합의를 통해 해협을 빠져나오며 봉쇄 해제의 신호탄을 쐈다. 이번 선박 통과로 해협 내 대기 중인 한국 선박은 25척으로 줄었으며, 이는 지난 2월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한국 국적선이 해협을 통과한 첫 사례다. 정부는 국제법상 보장된 자유 통항 원칙을 고수하며 남은 선박들의 조속한 귀환을 위해 이란 당국과 집중적인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26척 중 유조선 한 척이 이란 측과의 협의를 거쳐 오만만으로의 통항을 시작했다. 이번 선박의 해협 탈출은 지난 2월 말 전쟁 개시 이후 굳게 닫혀 있던 호르무즈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해당 선박의 통과가 최종 완료되면 해협 안쪽에서 대기 중인 한국 선박은 25척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이번 사례를 기점으로 남은 선박들의 순차적인 통항 정상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우리 유조선의 해협 통과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조 장관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유조선이 이란 측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고 있다"고 보고하며 외교적 성과를 공표했다. 이번에 통과가 결정된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10명 이내를 포함하여 총 20명 이상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 당국은 한국인 선원 비중이 높은 선박을 우선 협상 대상에 올려 이란 측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난 4일 비행체 공격으로 선체가 파손된 HMM 나무호 역시 현재 해협 내에 머물며 수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호는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선박이 겪은 물리적 위협의 상징적 사례로, 현재 해협 내 잔류 중인 25척의 선박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번 유조선 통과가 나무호를 비롯한 나머지 선박들의 연쇄적인 탈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업계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자국 선박의 안전한 귀환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협상력을 집중하고 있다.
외교 당국은 국제 수로에서의 자유 통항권이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침해될 수 없는 보편적 권리임을 협상의 대전제로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자국 선박이 공격받은 나무호 사건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기보다는 국제 규범에 따른 원칙적인 해결을 도모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공인된 국제 수로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가 간의 신뢰와 법치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보수적 외교 기조를 반영한 결과다. 외교부 관계자는 "모든 배의 자유롭고 조속한 통과를 전제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집중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유조선 통과는 이란 측의 일시적인 양보라기보다 정부가 축적해온 다각적인 외교적 관리 노력이 결실을 본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외교장관 특사를 현지에 파견하고, 양국 외교 수장 간 네 차례의 전화 회담을 통해 긴밀한 소통 채널을 가동해왔다.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방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선박 통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교한 설득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체계적인 관계 관리는 극단적 대립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실익을 확보하려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의 유효성을 증명한다.
조현 장관은 나무호 피격 사건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느냐는 국회 질의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하며 원칙 중심의 대응을 재확인했다. 조 장관은 "처음부터 모든 선박이 자유로운 통행을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이는 협상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국 선박에 대한 공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국제 사회에서 부적절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발언이다. 또한 여전히 이란의 영향권 내에 있는 나머지 선원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불필요한 자극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나무호 공격의 배후로 강력히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를 더욱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공격 주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선박의 일괄 석방을 요구하는 것이 법치와 정의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강력한 항의와 국제적 제재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이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강제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명확한 증거 확보 이전에 성급한 단정을 내리기보다는 실무적 협의를 통한 실효적 성과 확보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외교부는 향후 해협 내에 잔류한 25척의 한국 선박 모두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이란 측에 추가적인 요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란 당국과의 소통 채널을 상시 가동하여 선박별 통항 일정을 정밀하게 조율하고 선원들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정상화는 단순히 선박의 귀환을 넘어 한국 경제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향후 남은 선박들의 귀환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동력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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