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호르무즈 봉쇄 뚫은 HMM 유니버설 위너호, 200만 배럴 원유 싣고 첫 통과... 정부 "통행료 없는 외교적 결실"

김영 기자
호르무즈 봉쇄 뚫은 HMM 유니버설 위너호, 200만 배럴 원유 싣고 첫 통과... 정부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되었던 한국 선박 26척 중 HMM 소속 초대형 유조선 1척이 정부와 이란 당국 간의 긴밀한 협의 끝에 처음으로 해협을 빠져나왔다.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이뤄진 이번 통과는 20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 수급의 숨통을 틔웠으며, 나머지 25척의 안전한 귀환을 위한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한국 국적 선박이 이란 측의 명시적 통행 허가를 받아 안전 지대로 진입한 것은 지난 2월 전쟁 발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HMM이 운영하는 초대형 유조선(VLCC) 유니버설 위너호로, 카타르 인근 해역에서 대기하다가 이란이 제시한 특정 항로를 따라 이동을 완료했다. 이는 정부가 이란 측과 지속해온 외교적 채널이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진 사례이며, 향후 호르무즈 해협 내 물류 정상화를 가늠할 중요한 척도가 될 전망이다.

외교부는 이번 선박 통과를 위해 지난 2주간 특사를 파견하고 네 차례에 걸친 외교장관급 통화를 진행하는 등 전방위적인 협상력을 집중해왔다. 특히 이란 측은 지난 18일 밤 주이란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 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하며 협력의 신호를 보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국제법적 원칙과 자유 항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란 당국을 설득했으며, 유관국들과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선박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유니버설 위너호가 선적한 원유 200만 배럴은 국내 에너지 수급 안정화 측면에서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물량이다. 해당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약 10명이 승선하고 있어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인도적 차원에서도 이번 통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지금 이 순간 우리 유조선이 이란 측과 협의로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고 있다"며 "이란 당국과 협의를 마쳤고 어제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항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통행 허가 과정에서 한국 정부나 선사가 이란 측에 별도의 통행료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은 국가 간 협상의 원칙을 지켜낸 성과로 풀이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박 안전을 위해 이란을 포함한 유관국과 조율이 이뤄졌을 뿐 금전적 비용 지불은 없었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시장 질서와 국제 관례를 준수하며 이뤄진 정당한 항행권 확보라는 점에서 보수적 외교 원칙에 부합하는 결과다.

최근 발생한 나무호 피격 사건과 이번 통행 허가의 연관성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선을 긋고 있으나 국제 사회의 시각은 다소 복합적이다. 이란은 피격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의 강한 유감 표명과 사실관계 규명 요구가 이란 측에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란이 한국 선박의 통행을 허용한 것은 국제적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방지하려는 계산된 조치로 해석된다.

이란이 제시한 특정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조건은 일부 선사들에게 안전과 국제 제재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선사에 대해 제재 가능성을 경고한 상황에서, 이란 지정 항로 이용이 자칫 미국의 대이란 제재망에 걸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미 재무부의 주의보가 정부 간 교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민간 선사들이 느낄 심리적·법적 위축은 여전한 상태다.

해협 내에 잔류하고 있는 나머지 25척의 선박들에 대해서도 정부는 한국인 선원 비중과 화물의 중요도를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협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화물을 적재한 선박들이 우선적으로 검토 대상에 오를 것이며, 선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도 강화된다. 정부는 이번 유니버설 위너호의 사례를 표준 모델로 삼아 이란 당국과 추가적인 통행 보장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해상 물류의 불확실성은 곧 수입 원가 상승과 소비자 물가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으므로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민간의 전략적 대응이 결합되어야 한다. 향후 전개될 미-이란 관계의 향방과 국제 유가의 변동성을 주시하며 국가 경제의 핵심 동맥인 해상 수송로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이번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국제 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자유 항행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한국의 경제 구조상 해상 수송로의 안전은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법치와 원칙에 기반한 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인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적 접근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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