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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비바람 뚫은 남북 여자축구 혈투, 5700명 관중이 목격한 이념 너머의 스포츠 현장

음영태 기자
수원 비바람 뚫은 남북 여자축구 혈투, 5700명 관중이 목격한 이념 너머의 스포츠 현장
©연합뉴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격돌한 가운데, 5,700여 명의 관중이 악천후를 뚫고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과 수원FC위민의 맞대결은 비전향 장기수와 탈북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례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선 사회적 함의를 보여주었다. 시간당 10mm의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관중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남북 교류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수원FC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은 남북 스포츠 교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수원FC 전광판 집계 기준 5,7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이번 경기는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민간 차원의 접점이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했다. 특히 전체 관중 중 약 2,000명으로 추산된 남북공동응원단은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양측 선수 모두에게 성원을 보내며 성숙한 관람 문화를 선보였다.

기상 악화라는 변수도 축구를 향한 시민들의 열기를 꺾지는 못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시간당 10mm에 달하는 강한 비가 쏟아졌으나, 관중들은 우비와 우산을 갖추고 경기장에 입장하여 관람석을 메웠다. 일부 어르신들은 세찬 비바람을 피해 복도와 통로 계단에 서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으나,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탄식과 환호를 보내며 경기에 몰입했다. 이러한 악천후 속의 대규모 관중 동원은 여자축구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남북 대결이라는 특수성이 결합한 결과로 풀이된다.

공동응원단의 구성은 일반적인 스포츠 경기 관중석과는 차별화된 인구통계학적 특징을 보였다. 젊은 층 위주의 수원FC 서포터즈와 달리 응원단석에는 중장년층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이는 남북교류협력단체 회원과 후원자들이 대거 참여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시민사회 주도로 기획된 이번 응원전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세대들에게 특별한 감회를 선사했다. 현장에서는 특정 팀을 향한 일방적인 야유보다는 좋은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에 대한 격려의 박수가 주를 이루었다.

북한이탈주민 가족들이 경기장을 찾은 점은 이번 보도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사회적 현상이다. 2016년 탈북하여 경기도 화성에 정착한 김모(35) 씨는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아 북한 팀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내고향 팀의 득점 순간 기분이 좋았다는 솔직한 심경을 밝히며,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스포츠가 주는 묘한 향수와 감정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이는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스포츠를 통해 고향과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현장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상징하는 인물인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96) 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4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95년 출소한 안 씨는 쇠약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을 찾아 남북 선수들의 경기를 끝까지 관람했다. 안 씨는 하프타임 중 연합뉴스 취재진을 만나 "통일된 조국에서 이런 경기가 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안 씨의 참관은 통일부의 관람 의사 타진에 따른 것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은 그의 모습은 분단사(分斷史)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응원 문화 측면에서는 치어리딩 업체의 주도하에 '내고향' 구호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치어리더들은 북한 팀의 명칭인 내고향 구호를 집중적으로 유도하며 응원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수원FC의 득점 찬스에서도 관중들은 자발적인 박수를 보냈다. 수원FC 서포터즈석에는 국가 대항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게양되어 눈길을 끌었으며, 이는 한국 관중들이 지닌 국가적 정체성과 스포츠의 공정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일부 관중의 야유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경기는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북한 선수단의 경직된 태도는 민간의 따뜻한 응원 열기와 대조를 이루며 한계를 드러냈다.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은 승리를 거둔 후 비바람 속에서 자신들을 연호한 공동응원단을 향해 별도의 인사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승리 기념 촬영을 마친 뒤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갔으며, 이는 남북 관계의 비대칭적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으로 남았다.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의 이주성 사무총장은 "북한 선수단이 관중석을 향해 손이라도 흔들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번 경기는 스포츠가 이념의 장벽을 낮추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북한 당국의 폐쇄적인 태도가 민간 교류의 온기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재확인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포츠 교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소통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법치와 시장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적 관점에서도 민간 차원의 스포츠 행사는 국가 간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유용한 자산이지만, 북측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가 수반되어야 그 진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

향후 남북 스포츠 교류는 국제 대회의 틀 안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AWCL 준결승전처럼 국제기구가 주관하는 경기는 남북 양측이 최소한의 규칙을 준수하며 만날 수 있는 안전한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와 민간 단체는 이번 경기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높은 관심과 응원 열기를 바탕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스포츠 외교의 기회를 더욱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비바람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5,700명의 관중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축구 사랑을 넘어선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무언의 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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