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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구현한 바이러스 껍질 구조... 차세대 약물 전달체 혁명 예고

이성경 기자
AI로 구현한 바이러스 껍질 구조... 차세대 약물 전달체 혁명 예고
©연합뉴스

 

포스텍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계 바이러스의 자가조립 원리를 재현한 대형 단백질 구조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상민 포스텍 교수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70~220㎚ 크기의 나노케이지를 설계하여 약물 전달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며 차세대 바이오 기술의 핵심 이정표를 제시했다.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화학공학과 이상민 교수팀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바이러스 껍질의 단백질 조립 원리를 재현한 대형 단백질 구조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1일 이 교수와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의 공동 연구 성과를 공식 발표했다. 연구팀은 단일 단백질 구성 요소가 오각형과 육각형 배열을 동시에 형성하며 스스로 조립되는 설계 원리를 규명하여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보도는 현대 과학이 생명체의 정교한 구조를 디지털 환경에서 재설계하고 이를 실체화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단백질 나노케이지는 수많은 단백질 분자가 스스로 결합하여 만드는 나노미터 단위의 속이 빈 구조체를 의미한다. 이 구조체는 내부에 약물이나 유전물질, 효소 등을 안정적으로 탑재할 수 있으며 껍질 표면에 항원을 부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의료계에서는 특정 병변 부위에 정확히 약물을 전달하는 차세대 약물 전달 기술(DDS)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해 왔다. 다만 기존의 설계 기술은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완벽한 대칭 구조를 만드는 데 치중해 온 탓에 구조체의 크기와 형태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지녀 왔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는 하나의 단백질 블록을 수백 번에서 수천 번 반복 사용하면서도 거대한 껍질 구조를 형성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바이러스는 각 단백질이 놓이는 위치와 환경을 미세하게 조절함으로써 단순한 대칭을 넘어선 '준대칭성(Quasi-symmetry)' 원리를 활용한다. 연구팀은 바이러스 껍질이 확장되는 핵심 기제가 단백질 블록 사이의 각도와 휘어짐에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인공적으로 설계된 단백질이 위치에 따라 오각형과 육각형 환경을 동시에 형성하도록 유도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단백질 3개가 결합한 삼량체를 기본 블록으로 설정하고 AI 기반 단백질 구조 생성 도구인 '알에프디퓨전(RFDiffusion)'을 투입했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단백질이 서로 다른 각도로 정밀하게 맞물리도록 설계하여 거대한 돔 형태의 껍질 구조를 산출해 냈다. 이는 평평한 형태의 분자 타일들이 미세한 각도 변화를 통해 입체적인 곡면을 형성하는 물리적 원리를 단백질 공학에 접목한 결과다. 인공지능의 연산 능력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복잡한 준대칭 구조의 설계도를 단기간에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설계된 인공 단백질의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미생물을 이용한 실제 합성 공정을 진행했다. 합성된 단백질을 극저온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단백질들이 스스로 뭉쳐 70㎚에서 최대 220㎚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둥근 껍질을 형성하는 것이 확인됐다. 가장 작은 구조는 정교한 나노 축구공 형태를 띠었으며, 가장 큰 구조는 기본 단위보다 3배 이상 거대한 크기를 나타내며 확장성을 입증했다. 이는 이론적으로 설계된 분자 구조가 실제 생물학적 환경에서도 오차 없이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이상민 교수는 바이러스가 정교한 분자 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 인류가 모방해야 할 최적의 대상임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는 완벽한 대칭만이 정교한 구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최고의 자연 모방 대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단백질 블록의 국소 구조를 조절함으로써 최종 조립체의 크기와 형태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이번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어 기술이 향후 맞춤형 약물 전달체 제작에 있어 혁신적인 효율성을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지에 두 편의 논문으로 동시에 게재되며 그 학술적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두 교수는 이미 2024년에도 바이러스를 모방한 정사면체와 정육면체 등 다양한 형태의 나노케이지 연구를 발표하며 해당 분야의 권위를 확보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대형 구조체 설계 기술은 기존의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를 넘어 실제 바이러스와 유사한 복잡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는 한국의 단백질 공학 기술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장의 기술적 표준을 선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인공 단백질 구조체가 실제 임상 환경에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생체 내 안정성과 면역 거부 반응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수적이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백질 변성 문제와 생산 단가의 경제성 확보 역시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기술적 완성도가 높더라도 인체에 직접 적용되는 물질인 만큼 엄격한 법적 규제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검증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추가적인 AI 모델 개발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향후 이 기술은 백신 개발 및 암 치료를 위한 정밀 의료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케이지는 목표 세포에만 정확히 약물을 방출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정부와 학계는 이번 연구가 바이오 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부가가치 약물 전달 시장을 선점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갖춘 단백질 나노 구조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분자 설계 기술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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