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전 친모 몰래 해외로 보내진 한인 입양인이 허위로 조작된 입양 기록을 극복하고 반세기 만에 친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이뤘다. 덴마크로 입양된 양경민 씨는 부모 정보가 '알 수 없음'으로 기재된 서류상의 한계를 유전자 정보와 행정 지원을 통해 극복하며 단절된 혈연의 고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사례는 과거 무분별하게 진행된 해외 입양 과정의 제도적 허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입양동포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필요성을 시사한다.
양 씨는 1973년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넷째 딸로 태어났으나 생후 5개월 만에 가족의 곁을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당시 아들을 원했던 친부와 할머니는 친모가 친정에 간 사이 몰래 해외 입양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비정한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친부는 친모의 추적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실제 거주지인 일산 대신 부산을 기재하는 등 여권 서류를 조직적으로 허위 작성했다.
입양 기관의 기록은 사실상 백지 상태에 가까웠으며 양 씨의 서류에는 부모 정보가 온통 '알 수 없음(unknown)'으로 남겨졌다. 1974년 생후 10개월의 나이로 덴마크에 도착한 양 씨에게 남겨진 것은 이름조차 없이 번호가 적힌 작은 태그 하나가 전부였다. 이후 성인이 되어 입양 단체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정보를 요청했으나 자료가 전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되며 가족 상봉은 불가능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기적적인 반전은 2023년 8월 양 씨가 한국을 방문해 아동권리보장원(NCRC)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접수 불과 4개월 만인 그해 12월 친가족의 소식이 담긴 이메일이 덴마크로 전달되며 반세기 넘는 세월의 장벽이 무너졌다. 양 씨는 "가족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으나 너무나 순탄하게 상봉이 이뤄져 당황스러울 정도였다"며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2024년 인천공항에서 이뤄진 첫 상봉 현장에는 친모와 세 명의 언니, 여동생 등 일가족이 모두 모여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첫째 언니는 양 씨를 등에 업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갑작스러운 이별 뒤에 숨겨진 아픔을 토로했다. 친모는 딸이 해외로 입양된 사실을 수년 뒤에야 알게 되었으며 그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할 만큼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 씨는 상봉 당시 중병을 앓고 있던 친부와도 대면했으나 친부는 딸을 알아보지 못한 채 6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을 해외로 보낸 친부와 할머니를 원망하기보다 용서하는 길을 선택하며 과거와의 완전한 화해를 선언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며 덴마크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왔기에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것이 양 씨의 담담한 고백이다.
덴마크의 농가 마을에서 성장한 양 씨는 현재 물리치료 클리닉을 운영하며 현지 사회의 중추적인 일원으로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학교에서 유이한 입양인이었음에도 인종차별 없이 자라난 그는 이제 자신의 뿌리를 찾는 다른 입양인들을 돕는 공적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그는 약 9,000명의 한인 입양인이 거주하는 덴마크 내 최대 단체인 '코리아 클루벤'의 이사회 임원으로 봉사하며 동포 사회를 이끌고 있다.
이번 '2026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는 전 세계 12개국에서 모인 95명의 입양동포가 서로의 아픔과 역사를 공유하는 연대의 장이 되었다. 양 씨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외모와 성장 배경을 공유하는 동포들과의 만남에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는 덴마크 내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K팝과 K푸드 등 한류 열풍을 언급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이중 정체성이 이제는 커다란 자부심이 되었다고 밝혔다.
입양 전문가들은 과거의 부적절한 입양 관행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진상 규명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서류 조작과 금전적 동기는 입양인들에게 평생의 정체성 혼란과 상처를 남기는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 입양 정책 전문가는 "정부가 입양 기록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자 인권 회복의 시작이다"라고 제언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시의 극심한 빈곤과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했던 시대적 특수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모든 입양 사례를 현대의 윤리적 잣대로만 재단할 경우 당시 불가피한 선택을 했던 가족들에게 또 다른 사회적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다. 따라서 향후 진행될 진상 규명은 처벌이나 비난보다는 정확한 사실 확인과 가족 간의 화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는 향후 입양동포들이 보다 원활하게 가족과 재결합할 수 있도록 유전자 정보 공유 체계와 정책적 지원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대회 서면 축사를 통해 입양동포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을 약속하며 소외된 동포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표명했다. 양 씨는 모든 입양인에게 화해와 재회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기를 희망하며 한국과 덴마크 두 나라를 모두 소중한 모국으로 품고 살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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