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남북 화해와 교육 구국의 거목, 장충식 단국대 명예이사장 향년 93세 별세

이겨례 기자
남북 화해와 교육 구국의 거목, 장충식 단국대 명예이사장 향년 93세 별세
©연합뉴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교육 현장과 남북 체육 교류의 최일선에서 평생을 헌신한 장충식 단국대 명예이사장이 지난 20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1967년 단국대를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1991년 남북단일팀 구성을 주도했으며, 2000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는 등 현대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1932년 중국 톈진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한 독립운동가 장형 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민족의 비극과 재건을 몸소 겪으며 생을 마감했다. 부친 장형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친 뒤 광복 후 단국대를 설립했으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5·16 쿠데타 이후 대학 주간부가 폐교되는 등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고인은 1964년 부친이 남긴 "공부하는 학생은 교수들이 챙길 테니 너는 이념을 가진 아이들을 도와줘라"는 유언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교육 구국과 민족 화합의 길에 매진했다.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와 단국대 정치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와 미국 브리검영대에서 수학하며 학문적 기틀을 닦고 1961년 단국대 교수로 부임하며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군사 정권의 압박으로 대학이 존폐 위기에 처했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독립운동가가 세운 대학의 정당성을 호소하며 복교를 이끌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결단력을 바탕으로 1967년 단국대를 종합대학교로 승격시켰으며, 이후 36년간 총장과 이사장직을 역임하며 대학의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했다.

교육 영토 확장을 위한 고인의 추진력은 한국 최초의 지방캠퍼스인 천안캠퍼스 설립과 2007년 서울 한남동 캠퍼스의 경기 죽전 이전이라는 대규모 결단으로 구체화되었다. 한남동 캠퍼스 이전은 당시 교육 환경 개선과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으며, 대학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고인은 단순히 대학의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하지 않고 법치와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사학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여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했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 긴장 완화와 민족 동질성 회복은 고인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가장 뚜렷한 인도주의적 족적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89년 남북체육회담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해 북측과 협상을 벌였던 고인은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단장을 맡아 아르헨티나를 꺾는 기적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다. 당시 포르투갈 리스본 경기장에서 남북 관중이 하나 되어 단가인 '아리랑'을 합창하던 장면은 스포츠가 정치적 장벽을 허물 수 있음을 증명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인도주의적 가치 실현에 대한 고인의 집념은 200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재임 시절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성공적인 성사로 이어졌다. 반세기 넘게 생사를 알지 못하던 가족들이 재회하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남북 화해의 실질적인 물꼬를 텄다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국가적 중책을 맡을 때마다 특유의 균형 감각을 발휘하여 민족의 아픔을 보듬는 동시에 시장 질서와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가치를 견지했다.

말년에는 소설가로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의 철학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작품 속에 투영하여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했다. 2003년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와 2019년 '아름다운 인연'을 발표하며 한일 관계에 대한 전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광복 후 조선 땅에 남겨진 일본인들의 비참한 삶을 조명하며, 과거의 원한에 매몰되기보다 형 된 입장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독창적인 화해론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캠퍼스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사회와의 갈등이나 사학 운영의 보수적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발생한 마찰은 한국 교육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숙제이며, 고인의 운영 방식 또한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러나 고인이 보여준 교육에 대한 헌신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의 결단력은 이러한 부작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한국 교육과 외교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겼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를 통해 "나는 우리가 소인배처럼 행동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이제는 형 된 입장에서 일본을 용서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소신을 밝히며 민족의 품격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 일본인 교사들에게 구박을 받았던 개인적 아픔을 승화시켜 민족 전체의 미래를 걱정했던 고인의 철학은 단국대학교의 건학 정신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정신적 유산은 장호성 현 단국대 이사장을 비롯한 후학들에게 계승되어 대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별세는 한국 교육계와 남북 관계사에 있어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커다란 손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향후 고인의 유지는 대학 관계자들과 유족들에 의해 계승될 전망이며, 그가 다져놓은 남북 교류의 기틀은 향후 민족 화합의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빈소는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되었으며, 영결식은 오는 24일 오전 10시 단국대 죽전캠퍼스 체육관에서 단국대학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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