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대법 전원합의체 "노란봉투법 이전 원청은 하청노조 교섭 의무 없다"... 기존 판례 유지

이겨례 기자
대법 전원합의체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노란봉투법 시행 전 발생한 원·하청 간 단체교섭 분쟁에서 원청의 교섭 의무를 부정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을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볼 수 없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며 하청 노동조합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7년 소송 제기 이후 약 9년 만에 나온 최종 결론으로, 노사 관계의 법적 안정성과 계약 중심의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되기 전의 사안에 대해 과거의 법적 잣대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근로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원청 기업을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상대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하청 노조는 원청이 실질적인 근로 조건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6년부터 교섭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한 단체교섭의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한 다수의견 8인은 구 노동조합법 체제 아래에서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1986년 확립된 판례에 따라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와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 한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법적 해석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계약의 상대성 원칙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해왔다.

재판부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의 사용자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를 엄격히 구분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청이 하청 노조에 대해 지배·개입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를 가질 수는 있으나,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적극적 교섭 의무까지 부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다. 다수의견은 "원청이 적극적으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소급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선을 그었다. 개정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자로 확대했으나, 해당 법안에 소급 적용을 위한 경과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구법이 적용되는 과거 사안에 대해 개정법의 취지를 미리 반영하여 새로운 법리를 창설하는 것은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판단이다.

반면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 등 4인의 대법관은 헌법상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남겼다. 이들은 업무의 외주화가 확산된 현대 산업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가 실제 결정권을 가진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노동 3권이 형해화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간접고용이 급격히 늘어난 현실을 고려할 때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하청 노조는 지난 2016년 HD현대중공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2017년 1월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투쟁을 시작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 역시 HD현대중공업이 하청 근로자와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8년 12월 사건을 접수한 이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약 7년 넘게 법리 검토를 지속해온 끝에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결론지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하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고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오늘 판결은 개정 노동조합법 취지에 역행하는 결정이며 대법원이 노동 현장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를 지속해 나갈 방침임을 시사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 존중의 뜻을 밝히며 향후 성실한 노사 관계 구축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측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경영계 전반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노란봉투법 시행 전 사안들에 대한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향후 노사 관계는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는 사안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대법원이 과거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 판례를 유지했으나, 개정법 시행 이후의 사례에 대해서는 법 개정 취지에 맞는 새로운 해석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원·하청 간 교섭 요구가 거세질 것에 대비하며 법적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법#전원합의체#노란봉투법#이전#원청은
대법 전원합의체 "노란봉투법 이전 원청은 하청노조 교섭 의무 없다"... 기존 판례 유지 : 정치/사회 : 재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