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반도체 독주가 가린 수출 양극화, 5대 기업이 증가분 83% 싹쓸이했다

정휘 기자
반도체 독주가 가린 수출 양극화, 5대 기업이 증가분 83% 싹쓸이했다
©연합뉴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전체 수출 증가분의 80% 이상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상위 5대 기업이 독식하며 산업 생태계의 양극화가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대 기업의 수출 총액이 지난해 100대 기업 전체 실적을 넘어서는 기현상이 발생하며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발 훈풍이 AI 밸류체인에 속한 극소수 대기업에만 집중되면서 중견·중소기업이 담당하는 전통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출 구조가 상위 극소수 기업에 의존하는 기형적 역피라미드 형태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전체 수출액 2,199억 달러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상위 5대 기업의 수출액은 957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체 수출의 43.5%에 달하는 비중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했던 28.7%와 비교해 불과 1년 만에 14.8%포인트나 급등한 수치다.

수출 실적의 질적 측면을 살펴보면 상위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전체 수출 증가액인 603억 달러 중 82.8%에 해당하는 500억 달러가 상위 5대 기업에서 발생했다. 사실상 대한민국 수출 성장의 엔진이 단 5개의 기업에 의해 가동되고 있으며, 나머지 대다수 기업의 기여도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상위 기업군 내에서도 체급별 격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 1분기 수출 상위 10대 기업의 전체 수출액은 1,102억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1분기 상위 100대 기업의 전체 수출액인 1,057억 달러를 가볍게 추월했다. 10개 기업이 과거 100개 기업이 해내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며, 이는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견 대기업들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수출 실적 개선의 온기는 10대 기업 내부에서도 최상위권에만 머물렀다. 상위 10대 기업 전체 수출액 가운데 86.8%가 최상위 5개 기업에서 발생하며 하위 기업들과의 간극을 넓혔다. 반면 6위에서 100위권 사이에 포진한 기업들의 수출 증가분은 58억 달러에 불과해 전체 증가분의 9.6%를 차지하는 데 머물렀다.

이러한 극단적 쏠림의 근본 원인은 반도체 산업의 독주와 인공지능(AI) 관련 밸류체인의 호황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1분기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9%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11.6%에 불과했다. 글로벌 시장의 수요가 AI 인프라 구축에 집중되면서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최상위 기업들만이 수혜를 독점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수출 호조가 경제 전반의 펀더멘털 개선보다는 특정 섹터의 일시적 폭발력에 기댄 것이라고 경고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세계 경제는 AI와 그 밸류체인 내에서만 호황인 상황이다"라며 "국내 주력 대기업들이 AI 밸류체인에 속해 기회를 확보하고 있지만, 전통 산업에 머무는 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극단적인 실적 쏠림은 결국 잘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성과급 등 임금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량 기업에 자원과 성과가 집중되는 것은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생리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세계적인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국가 대표 기업들이 압도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경상수지 관리와 대외 신인도 제고에 필수적이라는 시각이다. 특정 기업의 독주를 경계하기보다 이들이 만든 낙수효과가 하부 생태계로 원활히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품목과 소수 기업에 편중된 수출 구조는 대외 변동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AI 거품 논란이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5대 기업의 수출액이 전년 대비 109.1% 폭증하는 동안 상위 100대 기업 기준 증가율이 52.8%로 반토막 난 사실은 우리 산업의 기초 체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향후 산업 정책의 방향은 AI 밸류체인에서 소외된 전통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극소수 기업이 이끄는 화려한 수치 뒤에 가려진 대다수 기업의 실질적 고통을 외면할 경우,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학계는 수출 지표의 양적 팽창에 안주하지 말고 산업 전반의 고른 성장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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