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구글 지도 반출 허가와 공간 AI 주권의 위기: "단순 길 찾기 넘어 생태계 종속 경계해야"

이성경 기자
구글 지도 반출 허가와 공간 AI 주권의 위기:
©연합뉴스

 

정부가 구글의 한국 지도 데이터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하면서 국내 공간정보 산업의 자생력 약화와 글로벌 빅테크로의 데이터 종속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과 로봇, 스마트시티를 구현하는 공간 기반 인공지능(AI) 모델인 'GeoFM'의 핵심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안보 논리를 넘어 국가 차원의 공간 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결정은 20년간 이어진 논쟁을 일단락 지었으나 이는 서비스 경쟁의 시작이 아닌 국가적 AI 주권 전쟁의 서막이다. 구글에 제공되는 교통 네트워크 데이터는 향후 자율주행과 로봇 산업의 근간이 되는 공간 기반 인공지능 모델 고도화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공간정보 산업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빅테크가 구축한 인프라에 영구히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도 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길 찾기 도구를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자율주행과 디지털트윈, 로봇 공학 등 첨단 산업은 정밀한 공간 정보를 바탕으로 학습된 AI 모델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과거의 지도 인식이 사용자 편의성 중심의 기능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공간 AI 모델을 누가 선점하느냐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되었다.

이임평 서울시립대 공간정보공학과 교수는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로봇, 스마트시티의 핵심 인프라이자 AI 기술과 결합해 거대한 생태계를 주도할 공간 기반 AI 모델의 핵심 자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구글 지도 반출 허가 결정이 단순한 내비게이션 시장의 점유율 싸움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파운데이션 모델에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학습시켜 모델을 고도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구글의 국내 지도 서비스 진출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도해온 국내 시장 지형에 근본적인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현재의 독점적 시장 구조에 안주할 경우 장기적으로 구글이 구축한 공간 AI 생태계에 편입되는 락인(Lock-in) 효과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이는 미래 신산업인 스마트시티와 자율주행 분야의 주도권을 통째로 내어주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부가 내건 국내 서버 기반 처리와 안보 위협 시 '레드버튼' 가동 등의 조건은 기술적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이미 반출되어 AI 모델 학습에 활용된 데이터를 사후에 삭제하거나 과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반출된 데이터가 목적 외 용도로 사용되거나 AI 학습에 녹아드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할 기술적 추적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완벽한 기술적 차단이 어렵다면 제도적 투명성을 강화하여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 활용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반출 데이터의 상세 범위와 레이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기적인 접근 기록과 보안 대응 현황을 담은 투명성 보고서 발행을 의무화해야 한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민관 검증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데이터 활용의 적절성을 상시 점검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어떤 공간정보가 어떤 AI 모델에 학습되었는지 기록하는 등록체계 도입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필수 과제다. 계약 위반이나 데이터 오남용이 적발될 경우 반출 허가를 즉각 회수하고 강력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책임 구조를 명문화해야 한다. 이는 글로벌 기업의 독주를 견제하고 국내 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로서 작용할 것이다.

국내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공공 데이터 개방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연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현재 국내 연구자와 스타트업들은 거대 모델 학습에 필요한 양질의 데이터를 구하지 못해 연구 개발에 심각한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산재한 공공 데이터를 AI 학습용 데이터셋으로 정비하여 민간이 자유롭게 활용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범용적인 한국형 공간 기반 AI 모델을 정부 주도로 개발하여 민간에 제공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모델 구축 비용을 정부가 인프라 차원에서 지원하고 이를 오픈 API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스타트업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이는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공간 AI 생태계를 조성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지도는 구축 시 인근 국가로의 확장성이 뛰어난 플랫폼 자산이라는 점을 활용해 적극적인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이나 베트남처럼 미국이나 중국의 시스템을 경계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공간 AI 인프라가 절실한 국가들이 전략적 공략 대상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레퍼런스 삼아 정부가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

일각에서는 지도 데이터 반출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며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데이터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AI 시대에 무분별한 개방은 전략 자산의 유출과 다름없다는 신중론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술적 보안책 마련과 제도적 감시 체계 구축, 그리고 국내 산업의 체질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공간 AI 주권을 수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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