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에서 경영계의 '업종별 구분 적용' 요구와 노동계의 '도급제 근로자 적용 확대'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노사 양측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의 고액 성과급을 두고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로 '상대적 박탈감'을 언급하며 각자의 논리를 전개했다.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제2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체계와 적용 범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 각 9명, 공익위원 7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는 업종별 구분 적용과 도급제 근로자 보호라는 상반된 의제를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이번 심의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맞아 지불 능력의 한계에 다다른 소상공인과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리는 양상을 보였다.
사용자 측은 중동발 전쟁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영세 업종의 지불 여력이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강조했다. 특히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 업종을 선별하여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는 '구분 적용' 방식을 이번 심의에서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고물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었음을 지표로 제시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이미 시간당 1만 원을 넘어섰으며 주휴수당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은 1만 2,000원을 상회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수준이 이미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기에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은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류 전무는 "최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 업종이라도 구분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영계의 절박함을 대변했다.
중소기업계 역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반도체 산업과 대비되는 내수 시장의 침체를 언급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코스피 지수가 8,000선을 돌파하는 등 거시 지표는 화려하지만 절대다수의 소상공인은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고 진단했다. 최고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 유지에 있으며, 최저 생계비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이번 심의의 핵심 과제임을 피력했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의 보호 범위를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종사자 등 도급제 근로자에게까지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들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서에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논의가 명시된 만큼 위원회가 전향적인 태도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맞춰 헌법이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취지를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현재 전문위원회에 비임금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력히 비판했다. 정확한 데이터 없이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플랫폼 노동자의 생계비와 임금 실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노동계가 이번 심의에서 도급제 근로자 이슈를 핵심 쟁점으로 부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기업의 천문학적인 성과급 지급 사례를 들며 저임금 노동자와의 소득 격차 문제를 제기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평생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을 단 한 번의 성과급으로 수령하는 현실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시각이다. 류 사무총장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수십 년 치 연봉을 단번에 넘어서는 보상 격차는 입직 경로나 개인의 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다"며 저임금 늪에 빠진 노동자를 위한 인상을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노사 양측이 모두 반도체 업계의 성과급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각자의 유리한 논거로 활용하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용자 측은 대기업의 지불 능력을 중소기업에 전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노동계는 소득 불평등 해소의 논리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계적 대립은 자칫 최저임금의 본질인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 생존권 보장이라는 심의 취지를 흐릴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회의에서 위원회는 다음 심의부터 도급제 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여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최저임금 최종 결정 시 단위는 시간급으로 정하되, 월 209시간 근로 기준의 월 환산액을 병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노사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해석되며, 향후 심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적용 범위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문위원회가 실시한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 분석과 임금 실태 조사 결과 등을 보고받으며 객관적 지표 검토에 착수했다. 법정 심의 시한은 6월 말까지이나 노사 간의 입장 차이가 워낙 뚜렷하여 올해도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3차 전원회의는 내달 4일 개최될 예정이며, 이때부터 업종별 구분 적용과 도급제 적용을 둘러싼 실질적인 수 싸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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