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한수원, 해외 사업 '1.4조 잠재 손실' 충격에 리스크 관리실 신설... 고강도 인적 쇄신 단행

이성경 기자
한수원, 해외 사업 '1.4조 잠재 손실' 충격에 리스크 관리실 신설... 고강도 인적 쇄신 단행
©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외 사업에서 발생한 1조 4,346억 원 규모의 대규모 잠재적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부실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독립 전담 조직인 '사업리스크관리실'을 신설했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과 루마니아 삼중수소제거설비 사업에서 자재 조달 차질과 인허가 지연으로 인한 천문학적 규모의 공사손실충당부채가 설정됨에 따라, 기존의 형식적인 검증 체계를 전면 폐기하고 본사 인력 100여 명을 현장으로 전진 배치하는 고강도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이번 조직개편은 단순한 인력 재배치를 넘어 해외 사업의 불확실성을 경영 전면에 내세운 위기관리의 산물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해외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리스크를 반영하여 총 1조 4,346억 원 규모의 공사손실충당부채를 설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사손실충당부채는 향후 공사를 마칠 때까지 예상되는 총비용이 총수익을 초과할 경우 그 예상 손실액을 부채로 인식해 미리 회계에 반영하는 항목으로, 이는 한수원의 재무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사업은 이번 부실 리스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한수원의 해외 사업 관리 역량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한수원은 러시아 원전 기업의 하청으로 참여 중인 이집트 엘다바 사업에서만 1조 2,146억 원의 충당부채를 설정했다. 대러시아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규격에 부합하는 자재를 적기에 조달하지 못한 데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자재 가격 폭등이 겹치며 사업비가 당초 예상을 크게 상회한 결과다.

루마니아에서 추진 중인 삼중수소제거설비(TRF) 사업 역시 유럽 현지의 높은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2,200억 원의 추가 손실 예상액을 기록했다. 해당 사업은 유럽 특유의 엄격한 인허가 절차와 까다로운 설계 승인 방식, 그리고 발주처의 추가적인 요구사항 반영 등으로 인해 공사가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이는 해외 원전 시장 진출 시 현지 법규와 표준에 대한 정밀한 사전 분석이 결여될 경우 국가적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내부 감사 결과는 한수원의 기존 리스크 검증 체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음을 신랄하게 폭로했다. 그동안 한수원은 해외 사업 검토회의와 리스크 검증위원회를 운영하며 사업 추진 여부와 타당성을 심의해 왔으나, 외부 인사의 참여 없이 내부 인력 위주로 형식적인 운영에 그쳤음이 드러났다. 전문적인 검토 과정이 생략된 채 장밋빛 전망에만 의존해 대규모 국책 사업을 추진해 온 관행이 결국 1조 원대의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신규 투자의 경제성과 금융, 법률, 공정 리스크를 독립적으로 사전 점검하는 '사업리스크관리실'을 사장 직속으로 신설하여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아울러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외부 전문가가 반드시 참여하는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마련하여 사업 참여 타당성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는 장치를 구축했다. 이는 과거의 밀실 행정에서 벗어나 시장 질서에 부합하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효율성 중심의 조직 운영을 위해 본사 조직을 슬림화하고 확보된 100여 명의 정예 인력을 원전 건설 및 안전 관리 현장으로 재배치했다. 특히 신한울 3·4호기의 차질 없는 건설을 위해 '신한울 제2발전소'를 발족하고, 모든 원전본부에 '재해대응 전담 조직'을 구축하여 현장 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공고히 했다. 이는 비대해진 본사 조직을 축소하고 실질적인 사업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인공지능(AI) 대전환 추진 체계도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 축 중 하나다. 기존 AI혁신처를 품질기술본부로 이관하여 원전의 디지털 전환 기능을 통합하고, 원전 운영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AI 대전환'을 본격 가동할 방침이다. 또한 재생에너지와 청정수소 추진 조직을 분야별 전담 체계로 재편하여 에너지 믹스 변화에 따른 사업 전문성과 추진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영동, 홍천, 포천 등 양수발전소의 적기 건설을 위한 현장 조직과 인력 보강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양수발전은 전력 계통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자산인 만큼, 현장 조직의 권한을 확대하여 국정과제인 에너지 안보 이행 기반을 더욱 단단히 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재 당면한 건설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경영진의 계산이 담겨 있다.

다만 이번에 설정된 공사손실충당부채가 반드시 확정적인 적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충당부채는 현재 시점의 데이터와 변수들을 토대로 향후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손실을 선제적으로 장부에 기재한 것이므로, 향후 공정 효율화나 자재 가격 안정화 등에 따라 실제 손실 규모는 변동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부채 설정 자체가 기업의 신인도와 재무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김회천 한수원 사장은 "이번 조직혁신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장 실행력을 강화하고, 책임경영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첫 조직개편을 통해 부실 사업에 대한 엄격한 자기반성과 함께, 기술 혁신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이 한수원의 고질적인 리스크 관리 부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으로 한수원은 강화된 리스크 관리 체계를 바탕으로 해외 사업의 수익성을 재평가하고 부실 요인을 조기에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해외 원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새롭게 신설된 사업리스크관리실이 단순한 자문 기구를 넘어 실질적인 사업 중단권이나 수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원전 수출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숫자 뒤에 숨겨진 부실의 싹을 잘라내는 단호한 결단이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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