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필리핀 경찰청의 파편화된 범죄 수사 정보를 통합하는 '한국형 디지털 치안'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며 재외국민과 관광객의 안전 확보에 나선다. 이번 사업은 2028년까지 진행되며 범죄 사건 보고, 수사 정보 관리, 전자 영장, 피의자 정보 관리 등 4개 핵심 시스템을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코이카는 이를 통해 사건 처리 기간 10% 단축과 사건 추적성 100% 확보라는 구체적인 치안 행정 효율화 목표를 제시했다.
코이카는 지난 28일 필리핀 경찰청(PNP)에서 '필리핀 경찰청 범죄 수사 정보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 추진을 위한 협의의사록(RD)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 양국 정부 간의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를 명문화한 실무 설계도이자 법적 구속력을 갖춘 계약의 성격을 띤다. 현지 체결식에는 이상화 주필리핀 한국대사와 정영선 코이카 필리핀사무소장, 후아니토 빅토르 레물리아 필리핀 내무지방자치부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업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된 '필리핀 경찰 수사역량 강화사업'의 성과를 잇는 후속 사업으로 기획되었다. 과거 사업을 통해 순찰 차량과 오토바이, 과학 수사 키트 등 물리적 치안 인프라를 지원했다면 이번에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전환에 집중한다. 이는 한국 형사사법기관의 표준화된 정보시스템 운영 경험을 이식하여 필리핀의 치안 행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고도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현재 필리핀 수사기관은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인해 동일한 사건 정보를 반복 입력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업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정형화된 데이터 관리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 불일치 문제는 신속한 수사와 범죄 대응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장애물로 지적되어 왔다. 코이카는 이러한 분산된 시스템을 하나의 통합 플랫폼으로 묶어 중복 업무를 최소화하고 수사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통합 시스템이 구축되면 마약 범죄나 온라인 스캠과 같은 지능형 초국가 범죄에 대한 대응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시간 데이터 공유와 분석이 가능해지면 범죄 수사의 사각지대가 해소되고 공공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이루어진다. 특히 필리핀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과 매년 증가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범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실질적인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양국의 치안 협력은 지난 3월 대통령의 필리핀 국빈 방문을 계기에 체결된 경찰 협력 개정 업무협약(MOU)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필리핀 정부는 한국의 수사 시스템과 장비 지원이 현지 치안 안정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지속적인 기술 이전을 요청해 왔다. 이는 단순한 원조를 넘어 아시아 지역 내 치안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한국의 디지털 행정 표준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영선 코이카 필리핀사무소장은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합 수사체계 구축이 한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임을 피력했다. 정 소장은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합 수사체계를 구축해 필리핀 국민과 우리 교민의 안전, 치안 강화를 동시에 지원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호세 멜렌시오 나르타테즈 필리핀 경찰청장 역시 이번 사업이 수사 관리 체계 고도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필리핀 현지의 인프라 환경과 디지털 숙련도 차이로 인해 시스템 정착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시스템 구축 이후 현지 경찰 인력의 운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내실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하드웨어 지원에 그치지 않고 현지 환경에 최적화된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사업 성패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코이카는 사업 종료 시점인 2028년까지 시스템의 안정적 정착과 함께 가시적인 치안 지표 개선을 이끌어낼 방침이다. 한국형 디지털 치안 시스템의 성공적인 이식은 향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로의 치안 기술 수출과 협력 확산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앞으로도 실무 협의를 지속하며 범죄 예방과 수사 공조를 아우르는 포괄적 안전 협력 체계를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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