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50만 단체 명의 도용한 ‘유령 성명’… 대법, 총선 허위사실 유포 목사 엄단

이겨례 기자
50만 단체 명의 도용한 ‘유령 성명’… 대법, 총선 허위사실 유포 목사 엄단
©연합뉴스

 

대법원이 22대 총선 과정에서 50만 명 규모의 대형 단체가 특정 후보의 사퇴를 촉구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한 목사와 언론사 관계자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특정 단체의 지지 여부를 조작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행위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및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함을 명확히 한 사례다. 목사 A씨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함께 기소된 지역 언론사 객원기자 B씨는 벌금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목사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동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역 언론사 객원기자 B씨 역시 벌금 200만 원의 형이 유지되었다. 이들은 총선 당시 당내 경선 후보자의 경쟁자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대규모 단체의 명의를 도용한 성명을 유포하여 선거 질서를 교란한 혐의를 받았다.

피고인들은 22대 총선 당시 한 정당의 경선 후보를 지지하며 약 1,000여 명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버 밴드에 경쟁 후보의 사퇴를 종용하는 성명서를 게시했다. 해당 성명서 하단에는 회원 수 50만 명에 달하는 C단체의 이름을 명시하며 마치 이 단체가 성명에 연대하고 있는 것처럼 기재했다. 조사 결과 C단체는 해당 성명서 발표에 참여하거나 내용에 동참한 사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성명서 내용이 C단체에 대한 허위 사실일 수는 있으나 특정 후보에 관한 허위 사실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후보자 관련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치며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또한 목사 A씨는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이 도용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성명서 게시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전략을 취했다.

법원은 이러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특정 단체의 의견 표명이 후보자의 당선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특정 단체가 후보자에 대해 특정 의견을 표시했다는 것은 후보자와 직접 관련된 사실이며, 이는 당선 경쟁력을 약화해 궁극적으로 당선을 방해하는 성질을 가진다고 보았다. 유권자의 왜곡된 선택을 유도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는 취지다.

목사 A씨가 주장한 계정 도용 및 해킹 가능성에 대해서도 법원은 객관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특히 A씨는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 자체를 부인하며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고 질타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최종 기각하며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대규모 단체의 공신력을 이용한 선거 개입 행위에 강력한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선거법 전문 변호사는 "유권자들은 단체의 규모나 사회적 명성을 보고 후보자를 평가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실체 없는 연대 사실을 꾸며내는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분석했다. 조직적인 허위 사실 유포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질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다만 일각에서는 특정 단체의 연대 여부를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이나 자질과 동일시하여 엄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적 의사 표현의 과정에서 발생한 기재 오류나 과장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위에 대해 보다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번 사건의 경우 의도적인 왜곡과 50만 명 규모 단체 명의 도용의 중대성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다고 보았다.

향후 선거 과정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허위 정보 유포에 대한 사법 당국의 감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종교인이나 언론 관계자 등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의 선거 개입 행위는 가중된 법적 책임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 역시 자극적인 성명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연대 소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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