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세월호 수습비용' 환수 소송 2심도 패소, 법치주의 원칙 따른 '명의신탁' 증명 실패

이겨례 기자
'세월호 수습비용' 환수 소송 2심도 패소, 법치주의 원칙 따른 '명의신탁' 증명 실패
©연합뉴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수습에 투입된 국고를 보전하기 위해 청해진해운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 인도 소송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명 주식이라는 정부 측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1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사고 책임자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여 사회적 비용을 환수하려던 정부의 법적 전략은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8-1부는 국가가 청해진해운 임직원 3명을 상대로 낸 주식 인도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 과정에서 별도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법정에서 낭독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1심의 법리적 판단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소송은 세월호 사고 이후 발생한 막대한 수습 비용을 원인 제공자 측으로부터 회수하려는 국가적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28명이 보유한 주식이 실질적으로 유 전 회장의 소유라고 판단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정부는 해당 주식들이 유 전 회장으로부터 명의신탁된 자산이거나 상속된 재산인 만큼, 이를 인도받아 참사 관련 비용 배상에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 제기 이후 약 9년 가까이 이어진 공방 끝에 정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법부의 일관된 판단 근거는 명의신탁 관계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의 부재에 집중되어 있다. 1심 재판부는 유 전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주식을 명의신탁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정황이나 물증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주식의 소유권은 등기 및 명부상의 기재를 우선하며,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고도의 증명 책임이 요구된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정부의 이번 패소는 앞서 진행된 다른 측근들과의 소송 결과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유 전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김혜경 전 한국제약 대표를 상대로 한 주식 인도 소송에서도 정부는 1심과 2심 모두 패소한 전례가 있다. 법원은 김 전 대표가 보유한 주식 역시 유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았으며, 이번 임직원 대상 소송에서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정부는 해당 주식들이 유 전 회장의 지배력 하에 있었음을 강조하며 국가적 배상 책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는 "확정된 법리에 따르면 명의신탁 여부는 자금의 출처와 관리 주체 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며 "단순히 정황만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감정적 호소보다는 철저한 증거 중심주의를 택하는 사법부의 보수적 태도를 반영한다.

시장 질서와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판결은 국가 권력에 의한 재산 환수가 법적 절차와 증거의 엄격성을 준수해야 함을 시사한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비극의 책임 소재를 묻는 것과 별개로, 개인 소유의 주식을 국고로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법률이 정한 명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효율적인 비용 환수도 중요하지만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참사 수습에 투입된 국민의 혈세를 보전하기 위해 법원이 보다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책임자들의 재산 은닉 수법이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국가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자칫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기계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증거법상의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향후 정부가 상고를 통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구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이미 1심과 2심에서 동일한 취지의 판결이 내려진 만큼,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이번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여 향후 남은 관련 소송과 구상권 청구 절차에 대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항소심 판결은 세월호 관련 국고 환수 작업이 법적 증명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혔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제기한 주식 인도 청구가 잇따라 기각됨에 따라, 유 전 회장 일가 및 측근들을 향한 재산 추징 작업은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법적 절차의 완결성을 높이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자산 환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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