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앞두고 금융권 지각변동...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쟁탈전 가열

정휘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앞두고 금융권 지각변동...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쟁탈전 가열
©연합뉴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목전에 두고 국내 대형 금융지주와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를 위한 1조 원대 베팅에 나섰다. 하나은행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지분을 대거 사들인 데 이어 삼성과 한화, 미래에셋 등 주요 그룹사들이 전방위적인 투자 공세를 펼치며 시장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전통 금융권의 자본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급격히 유입되면서 금융과 가상자산의 분리 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나은행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 지분 6.55%를 1조 33억 원에 인수하며 금융권 가상자산 투자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번 인수는 중대형 금융 계열사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수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대형 거래로, 은행 측의 미래 사운을 건 과감한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예대마진 구조를 넘어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플랫폼을 결합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도 두나무 지분 확보에 동참하며 가상자산 생태계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증권과 삼성SDS, 삼성카드는 카카오인베스트가 보유했던 두나무 지분 4.0%를 공동 취득하며 각자의 사업 영역에 맞춘 시너지를 모색 중이다. 삼성증권은 토큰증권 사업을, 삼성SDS는 블록체인 인프라 구축을, 삼성카드는 스테이블코인 유통망 확보를 각각의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기존 지분에 더해 3.90%의 추가 지분을 취득하며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보는 두나무가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과 추진 중인 포괄적 주식 교환 및 합병 추진 상황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형 IT 기업과의 결합이 가시화될 경우 지분 가치 상승은 물론 강력한 플랫폼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자 결정의 배경이 되었다.

증권업계는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온라인 트레이딩 플랫폼인 로빈후드와 유사한 형태의 통합 거래 환경 구축을 시도할 계획이다. 상장 주식과 가상자산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동시에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신규 투자자 층을 대거 흡수하겠다는 계산이다. 최근 주식 시장 호황으로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증권사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가상자산 거래소가 최적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래에셋그룹 역시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의 지분 92.06%를 1,335억 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하며 시장 경쟁에 가세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인수가 확정될 경우 코빗의 경영권은 미래에셋 측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이는 대형 금융 그룹이 가상자산 거래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올라서는 첫 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라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인 OKX벤처스는 코인원 지분을 각각 20%씩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쟁탈전의 열기를 더했다. OKX벤처스의 참여는 바이낸스의 스트리미 지분 인수에 이어 해외 대형 거래소가 국내 원화 거래소 지분을 확보한 두 번째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기존 대주주인 차명훈 대표와 컴투스홀딩스의 구주 일부 및 신주를 인수하며 지배구조의 다변화와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동시에 꾀했다.

주요 시중은행인 KB, 신한, 우리, NH농협금융 등도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컨소시엄 결성이나 협업 가능성을 물밑에서 긴밀히 타진 중이다. 하나금융이 선제적으로 거액을 투입해 업비트와 손을 잡은 상황에서 경쟁사에 시장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는 이제 단순한 투자를 넘어 금융 그룹의 디지털 전환 성패를 가를 필수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형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거래소 지분 투자에 나서면서 금융과 가상자산을 엄격히 분리하던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른바 금가분리 원칙이 유명무실해지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전통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자본의 지배력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가상자산 시장 본연의 독립성과 혁신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에 진입하지 않으면 향후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공개된 기업들 외에도 상당수의 IT 기업과 외국계 자본이 국내 거래소 지분 인수를 심각하게 고려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흐름은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의 핵심 편재로 들어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로 해석된다.

다만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조항이 담긴 디지털자산기본법의 국회 논의 속도가 향후 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남아 있다. 입법 과정이 지연되거나 규제 가이드라인이 예상보다 엄격하게 설정될 경우 현재의 투자 열기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정위의 기업 결합 심사 결과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판도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화#스테이블코인#제도화#앞두고#금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