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증가액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100배를 넘어서며 5년 1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았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함에 따라 마이너스 통장을 동원해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빚투' 수요가 금융권 자금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중심축이 부동산에서 주식 투자용 단기 자금으로 급격히 이동하며 여신 건전성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주요 시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이 한 달 사이 2조 6,000억 원 이상 급증하며 자본 시장의 유동성 쏠림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28일 기준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총 106조 9,909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지난 4월 말 기록한 104조 3,413억 원에서 불과 한 달 만에 2조 6,496억 원이 불어난 수치다. 이러한 증가 규모는 코스피가 3,200선을 돌파했던 2021년 4월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로 기록되었다.
신용대출의 폭발적인 성장은 정부 규제와 시장 금리 영향으로 정체된 주택담보대출 추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5대 은행의 이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12조 2,693억 원으로 전월 대비 증가 폭이 250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1조 9,104억 원이 늘어나며 과열 양상을 보였던 부동산 대출 시장이 한 달 만에 급격히 냉각된 결과다. 결과적으로 신용대출 증가액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100배를 상회하며 가계부채 구조의 질적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전체 가계대출 잔액 역시 주택담보대출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의 견인에 힘입어 770조 원 시대를 열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총액은 770조 2,728억 원을 기록하며 전월 말 대비 2조 9,768억 원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증가 폭으로, 부동산 거래 절벽 속에서도 투자 목적의 차입 수요가 여전히 강력함을 입증한다. 대출 시장의 무게추가 자산 형성 목적의 장기 대출에서 수익 추구 목적의 단기 대출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마이너스통장으로 불리는 신용한도대출의 증가세가 이번 '머니무브' 현상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5대 은행의 개인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이달 28일 기준 41조 9,303억 원으로 한 달 사이 2조 1,426억 원이 폭증했다.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한 달 만에 2조 원 넘게 불어난 것은 2021년 4월 이후 5년 1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잔액 규모 자체도 2022년 12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하며 가계의 단기 차입 의존도가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통상적인 자금 상환 주기마저 무시하는 투자 열풍은 월말 급여일 전후의 데이터에서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기업들의 급여 지급이 몰리는 25일 이후에는 대출 잔액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번 달에는 21일 대비 오히려 6,500억 원가량 잔액이 늘어났다. 이는 차주들이 월급을 받아 대출을 상환하기보다는 오히려 추가 자금을 확보해 증시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심리가 가계의 재무적 판단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시장 환경은 이러한 '빚투' 광풍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대출 심사가 간편하고 자금 활용이 자유로운 신용대출을 주식 매수 자금으로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되면서 발생한 풍선효과가 신용대출 시장으로 전이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의 유동성이 생산적 투자보다는 자산 시장의 가격 부양에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신용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4.16~5.85%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상단 금리는 6%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는 중동 전쟁 여파로 불확실성이 컸던 지난 3월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시장 금리 상승기가 지속될 경우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 환경에서도 차입을 멈추지 않는 공격적 투자 성향은 향후 자산 가격 하락 시 금융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신용대출 급증이 일시적인 투자 수요 집중과 계절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신중론을 제기한다.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자들이 빠르게 자금을 회수하며 대출 잔액이 다시 안정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주택 시장의 거래 침체와 맞물려 신용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의 유일한 통로가 된 현 상황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계적 중립 관점에서도 현재의 대출 증가 속도는 자산 가격의 펀더멘털을 앞서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규제에 묶여 주택담보대출 영업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에서 빚투를 위한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경우 담보가 없는 만큼 시장 변동성에 취약하므로 여신 건전성 악화 여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차입 투자는 가계 경제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향후 금융당국은 신용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추가적인 관리 대책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대출 잔액이 역대급 수치를 기록함에 따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은 시장의 유동성 파티가 끝난 뒤 찾아올 금리 역풍에 대비하여 보수적인 자금 운용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산 시장의 활황 뒤에 숨은 부채의 늪이 가계 금융의 무결성을 위협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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