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중동 전쟁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5개월여 만에 최대 변동폭을 기록하며 1,504.3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518.2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과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이 유입되며 하락 반전했다. 미국 대선 정국과 맞물린 중동 종전 협상의 불투명성이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양상이다.
원/달러 환율이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와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교차하며 하루 새 18원 이상 출렁이는 극심한 변동성을 노출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3.6원 내린 1,504.3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0.9원 오른 1,508.8원으로 출발한 뒤 오전 한때 1,518.2원까지 치솟으며 시장의 공포를 자극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기록한 1,519.4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외환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이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외환시장을 뒤흔든 핵심 변수는 중동 전쟁의 종전 협상을 둘러싼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기류 변화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전쟁 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 초안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보도하며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당초 미국과 이란 당국자들이 종전 MOU에 잠정 합의하며 평화 정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사실상 거부하며 제동을 건 것이다. 이로 인해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급격히 강화되었고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전 중 급등세를 타던 환율은 오후 들어 수출업체의 물량 출회와 당국의 미세조정 경계감이 작동하며 방향을 급격히 선회했다. 환율은 오후 2시 52분께 장중 저점인 1,500.0원까지 떨어지며 오전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는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렸다. 이날 기록한 장중 변동폭 18.2원은 작년 12월 26일의 24.8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큰 수치로 기록됐다. 수출업체들이 환율 고점 부근에서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매도하는 네고 물량을 쏟아낸 점이 환율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자금 유출세는 환율의 하방 압력을 제한하며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2조 9,133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16거래일 연속 '팔자' 기조를 이어갔다. 코스피 지수가 8,788.38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현상 속에서도 외환시장은 외국인의 이탈로 인해 불안정한 흐름을 지속했다. 주식시장의 호조가 환율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례적인 디커플링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들도 원화의 상대적 약세를 뒷받침하며 고환율 기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1% 상승한 99.006을 기록하며 강세를 유지했다. 엔/달러 환율 역시 0.12% 오른 159.470엔을 나타냈으며,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43.42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2.82원 하락했다. 일본 엔화의 동반 약세 속에서 원화 역시 글로벌 통화 질서의 변동성 아래 놓여 있는 상황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의 환율 변동성이 펀더멘털보다는 대외 정치적 변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며 "당분간 1,500원선을 중심으로 한 높은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환율이 안정적인 하향 추세로 돌아서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환율이 1,510원을 넘어설 경우 외환당국의 실개입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추가 급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할 경우 수입 물가 상승을 자극해 국내 물가 안정 기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당국의 개입 명분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날 오후 환율이 급격히 꺾인 과정에는 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대한 시장의 강한 경계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의 자정 작용과 정책 당국의 의지가 맞물리며 환율 상단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향후 외환시장은 중동 전쟁의 전개 양상과 미국의 추가적인 정책 메시지에 따라 변동 폭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MOU 승인 거부가 단순한 협상용 카드인지, 혹은 전면적인 정책 수정인지를 파악하려는 시장의 눈치 보기가 치열해질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 진정 여부와 국내 수출업체들의 달러 공급 규모 역시 환율의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꼽힌다. 기업과 가계는 고환율 장기화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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